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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March 18, 2019

콩나물에 대한 예의 

복효근 콩나물을 다듬는답시고 아무래도 나는 뿌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무슨 알량한 휴머니즘이냐고 누가 핀잔한대도 콩나물도 근본은 있어야지 않느냐 그 위를 향한 발돋움의 흔적을 아무렇지 도 않은 듯 대하지는...

슬픔의 문수

조정인   허리께에 닿는 낮은 대문, 집둘레는 빨강 노랑 자잘한 꽃들로 가꾸어져 있다 떠오르다 가라앉곤 하는 섬 하나, 심하게 다리 저는 남자가 그리로 가더니 한참을 구겨앉는다...

셀프 빨래방

셀프 빨래방   이영주   빨래를 걷고 개고 창문을 닫는 너의 손에서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다른 행성으로 건너가다가 미끄러진 꿈 새벽에는 미열에 시달리고 답답하고 외롭다는 너의 중얼거림이 멍청해서 세탁기를...

곰으로 돌아가는 사람

곰으로 돌아가는 사람 이덕규 서울 한복판 마로니에 공원에 곰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 옛날 곰에서 사람으로 슬쩍 자리 바꿔 앉은 죄 곰에게도 절반의 책임이 있을 터 필시 저...

여장 남지 시코쿠

여장 남지 시코쿠 황병승 하늘의 뜨거운 꼭짓점이 불을 뿜는 정오 도마뱀은 쓴다 찢고 또 쓴다 (악수하고 싶은데 그댈 만지고 싶은데 내 손은 숲 속에 있어) 양산을 팽개치며 쓰러지는 저 늙은...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이승하 오죽했으면 죽음을 원했으랴 네 피고름 흘러내린 자리에서 꽃들 연이어 피어난다 네 가족 피눈물 흘러내린 자리에서 꽃들 진한 향기를 퍼뜨린다 조금만 더 아프면 오늘이 간단 말인가 조금만 더 참으면 내일이 온단...

당분간

당분간 최승자 당분간 강물은 여전히 깊이깊이 흐를 것이다 당분간 푸른 들판은 여전히 바람에 나부끼고 있을 것이다 당분간 사람들은 각자 각자 잘 살아 있을 것이다 당분간 해도...

반가사유

반가사유   류근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술집 여자하고나 눈 맞아야지 함석 간판 아래 쪼그려 앉아 빗물로 동그라미 그리는 여자와 어디로도 함부로 팔려 가지 않는 여자와 애인 생겨도 전화번호 바꾸지 않는 여자와 나이롱...

별   권덕하   물속 바닥까지 볕이 든 날 있다 가던 물고기 멈추고 제 그림자 보는 날 하산 길 섬돌에 앉은 그대 등허리도 반쯤 물든 나뭇잎 같아 신발 끄는 소리에 볕 드는...

제주섬, 동백꽃, 지다 

제주섬, 동백꽃, 지다   변종태   어머니는 뒤뜰의 동백나무를 잘라버렸습니다. 젊은 나이에 뎅겅 죽어버린 아버지 생각에 동백꽃보다 붉은 눈물을 흘리며 동백나무의 등걸을 자르셨지요. 계절은 빠르게 봄을 횡단(橫斷)하는데, 끊임없이 꽃을 떨구는 동백, 붉은 눈물 떨구는 어머니, 동백꽃 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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