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숭어의 길

박노해

그 가을 고향 갯가에 노을이 질 때

나는 마른 방죽에 홀로 앉아서

바다로 떨어지는 강물을 바라보았지

숭어들이 눈부신 은빛 몸을 틀며 

바다에서 강물 위로 뛰어오르는 걸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지 

그렇게 거센 물살을 거슬러

숭어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몸을 떨며 지켜보고 있었지

가도 가도 어둠 깊은 시대를 달리며 

절망이 폭포처럼 떨어져 내릴 때면

그날의 은빛 숭어를 떠올리곤 했었네

가난한 사람들이 벼랑 끝에서 떨어져 내릴 때

인간성이 급류에 휩쓸려 무너져 내릴 때

나는 그 은빛 숭어의 길에 대한 믿음 하나 

끝내 버릴 수 없었네

급류로 떨어지는 물기둥 한 중심에는

강력한 상승의 힘이 들어 있어

거세게 떨어지는 중력을 상쇄하는

가벼운 나선의 길이 숨어 있다고,

물질세계가 추락할 때 그 한 중심에는

정신의 상승로가 내재되어 있다고

지금 모든 것이 무너지는 정점의 시대에

더 높은 인간성으로 도약할 수 있는

신비한 기회의 길이 내재되어 있다고

나는 은빛 숭어의 길에 대한 믿음 하나 

끝내 저버리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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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는 것들이 꼭 절망은 아니라고 시인은 은빛 숭어를 떠올린다. 떨어지는 가운데 솟아오르는 생명에 대하여, 저버리지 않는 믿음에 대하여 시인이 바치는 것은 끝내 지켜야할 희망이 아닐까.

박노해 시인이 12년 만에 펴낸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에서 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