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C
Montreal
Thursday, July 19, 2018
Home 칼럼 변은숙 - 읽고 싶은 시

변은숙 - 읽고 싶은 시

아득한 성자

오현 스님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등 뒤의 사랑

등 뒤의 사랑   오인태   앞만 보며 걸어왔다. 걷다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등을 돌리자 저만치 걸어가는 사람의 하얀 등이 보였다. 아, 그는 내 등뒤에서 얼마나 많은 날을 흐느껴 울었던 것일까....

사라진 손바닥

사라진 손바닥   나희덕       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봄은

봄은   신동엽     봄은 남해에서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맨발로 걷기

장석남   생각난 듯이 눈이 내렸다   눈은 점점 길바닥 위에 몸을 포개어 제 고요를 쌓고 그리고 가끔 바람에 몰리기도 하면서 무언가 한 가지씩만 덮고 있었다   나는 나의 뒤에 발자국이 찍히는 것도 알지...

전갈

류인서   봉투를 열자 전갈이 기어 나왔다 나는 전갈에 물렸다 소식에 물렸다 전갈이라는 소식에 물렸다 그로부터 나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빙그레 웃곤 하였다 축축한 그늘 속 아기버섯도 웃었다 곰팡이들도 따라 웃었다 근사하고...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3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희덕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 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

봄길 

봄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초봄의 뜰 안에

초봄의 뜰 안에   김수영   초봄의 뜰 안에 들어오면 서편으로 난 난간 문 밖의 풍경은 모름지기 보이지 않고 황폐한 강변을 영혼보다도 더 새로운 해빙의 파편이 저 멀리 흐른다 보석 같은 아내와 아들은 화롯불을 피워가며 병아리를 기르고 짓이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