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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May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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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은숙 - 읽고 싶은 시

전갈

류인서   봉투를 열자 전갈이 기어 나왔다 나는 전갈에 물렸다 소식에 물렸다 전갈이라는 소식에 물렸다 그로부터 나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빙그레 웃곤 하였다 축축한 그늘 속 아기버섯도 웃었다 곰팡이들도 따라 웃었다 근사하고...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3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희덕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 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

봄길 

봄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초봄의 뜰 안에

초봄의 뜰 안에   김수영   초봄의 뜰 안에 들어오면 서편으로 난 난간 문 밖의 풍경은 모름지기 보이지 않고 황폐한 강변을 영혼보다도 더 새로운 해빙의 파편이 저 멀리 흐른다 보석 같은 아내와 아들은 화롯불을 피워가며 병아리를 기르고 짓이긴...

시간

시간   이민하   새들이 나란히 앉아 지붕의 색을 섞고 있다 나무들이 기어올라 마지막 얼굴까지 번지도록 오래오래 표정을 서로 바꾸는 열두 마리 어두워지자 나는 이름으로 구분했다 아침이 왔고, 내일은 오늘이 되었다 몇 마리가...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광어

광어 홍사성 나도 참 어지간했던 모양이다 온몸 발기발기 저미는 동안 비명 한 마디 못 지르고 접시 위에서 파르르 경련하며 내 살점 뜯어가는 사람들 눈 빤히 뜨고 쳐다봐야 하다니 너도 참 어지간할 것...

This, Too, Shall Pass Away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Lanta Wilson Smith   When some great sorrow, like a mighty river, Flows thro’ your life with peace-destroying pow’r, And dea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