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김명인

 

모감주* 숲길로 올라가니

잎사귀들이여, 너덜너덜 낡아서 너희들이

염주소리를 내는구나, 나는 아직 애증의 빚 벗지 못해

무성한 초록 귀때기마다 퍼어런

잎새들의 생생한 바람소리를 달고 있다

그러니, 이 빚 탕감 받도록

아직은 저 채색의 시간 속에 나를 놓아다오

세월은 누가 만드는 돌무덤을 지나느냐, 흐벅지게

참꽃들이 기어오르던 능선 끝에는

벌써 잎지운 굴참 한 그루

늙은 길은 산맥으로 휘어지거나 들판으로 비워지거나

다만 억새 뜻 없는 바람무늬로 일렁이거나

 

* 모감주나무의 열매는 염주(念珠)를 만드는데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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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로 염주를 만든다는 모감주 나무 숲에서 애증의 빚이 있다는 시인이 자연의 순리 속에 스스로를 풀어놓는다.   잎사귀든 굴참 나무든 늙은 길이든 이제 시인은 모호한 경계에 다달아 들판으로 비워지고 뜻 없는 바람무늬로 일렁이고 있겠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질척이는 시어들의 난해함 속에서 흔들림 없이 깊이 있는 시를 쓰는 시인께 고개 숙인다.  김명인 시인은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제 2회 김달진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