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결 가능성이 높아졌던 캐나다와 미국 간 무역협상이 자동차 관세와 캐나다의 독자적인 무역정책, 프랑스어 및 문화 보호 문제 등을 둘러싼 막판 이견으로 결국 결렬됐다.
마크 카니(Mark Carney) 캐나다 총리는 22일 미국과의 협상이 최종 단계에서 무산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캐나다의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독자적인 통상정책과 언어·문화 보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카니 총리는 미국과 합의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협상 막판 자동차 분야에서의 캐나다산 부품 인정 문제와 제3국과의 무역협정 체결에 대한 제한, 언어와 문화 정책 등을 둘러싼 새로운 이견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은 앞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캐나다산 상품에 적용할 예정이던 50% 관세의 시행을 사흘 연기하면서 양국 협상이 진전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때 캐나다와 “합의가 이뤄졌다”고 주장할 정도로 타결 가능성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캐나다 측도 협상이 상당 부분 진전된 것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카니 총리는 이번 주 초 각 주 총리들에게 잠정적인 합의 내용을 설명했으며, 합의의 일환으로 각 주가 미국산 주류 판매를 다시 시작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그러나 최종 협상 과정에서 양측의 입장 차이가 다시 커지면서 카니 총리는 협상단을 오타와로 불러들였다. 그는 미국 측이 제시한 최종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며 “나쁜 합의에서 걸어나왔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장 큰 쟁점 가운데 하나는 자동차 산업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캐나다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했다. 캐나다 자동차 산업은 온타리오를 중심으로 미국 자동차 산업과 긴밀한 공급망을 형성하고 있으며, 완성차 생산뿐 아니라 부품업체 등 관련 산업에 수만 개의 일자리가 걸려 있다.
양국은 이번 협상에서 자동차 시장을 어떻게 통합적으로 운영할지를 놓고 상당한 진전을 이뤘지만, 최종 단계에서 차량에 포함된 캐나다산 부품과 생산분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측이 승용차를 중심으로 한 합의에는 응할 의사를 보이면서도 중형·대형 차량을 관세 완화 대상에 포함하는 데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문제가 됐다.
카니 총리는 이 같은 조건이 받아들여질 경우 온타리오 오크빌의 포드 공장과 오샤와의 제너럴모터스(GM) 공장 등 트럭 생산과 연관된 캐나다 자동차 산업에 장기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핵심 쟁점은 캐나다가 미국 이외의 국가들과 독자적인 무역협정을 체결할 권한이었다.
카니 총리에 따르면 미국 측은 협상 마지막 단계에서 캐나다가 다른 국가들과 체결할 수 있는 무역협정을 제한하는 내용의 조건을 제시했다.
캐나다는 미국의 관세 압박이 본격화한 이후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세계 각국과 경제·무역 관계 확대를 추진해왔다. 인도네시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과 협정을 체결하고 인도와도 협상을 추진하는 등 시장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카니 총리는 캐나다가 자유무역을 지지하며 세계 여러 국가에 중요한 교역 상대국이라고 강조하면서 미국이 캐나다의 다른 국가와의 무역 관계를 제한하려 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은 또 캐나다가 제3국에 적용하는 관세를 미국의 관세 정책과 일정 부분 일치시키는 방안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카니 총리는 철강처럼 캐나다와 미국이 사실상 하나의 통합시장을 구성할 경우 제3국에 대한 관세 정책을 조율하는 방안 자체는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경우 캐나다 상품이 미국 시장에 진입할 때 적용받는 관세는 다른 국가보다 명백하게 낮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캐나다가 시장을 통합하면서 캐나다에 다른 국가와 동일한 수준의 관세를 적용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협상에서 특히 퀘벡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프랑스어와 문화 보호정책이다.
카니 총리는 미국 측이 캐나다의 언어와 문화 보호정책을 제한하려 했으며 이는 단순한 통상 문제를 넘어 캐나다의 주권과 관련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인 협상 내용을 모두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미국 측 요구 가운데 프랑스어 관련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카니 총리는 이후 프랑스어로 답변하면서 미국 측 제안에 프랑스어와 퀘벡 문화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내용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크리스틴 프레셰트 퀘벡주 총리가 캐나다·미국 협상에서 공급관리제와 퀘벡 문화, 프랑스어 보호를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조건으로 제시했던 것과도 연결된다.
미국 정치권은 이전부터 캐나다의 문화산업 보호정책에 불만을 표시해왔다. 특히 캐나다의 온라인스트리밍법(Online Streaming Act)을 미국 기업에 차별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해왔다.
2023년 제정된 온라인스트리밍법은 캐나다 방송통신위원회(CRTC)가 넷플릭스와 아마존 등 대형 해외 온라인 플랫폼에 캐나다에서 발생하는 매출의 일부를 캐나다 콘텐츠 제작 지원 등에 사용하도록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스트리밍 업체와 미국영화협회(Motion Picture Association)는 이 같은 규제에 반발해 법적 대응에도 나선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올여름 예정된 캐나다·미국·멕시코 협정(CUSMA) 검토를 앞두고 이 법을 양국 간 무역 현안 가운데 하나로 지목했다.
결국 이번 협상은 관세율을 얼마나 낮출 것인지에 대한 단순한 경제협상을 넘어 자동차 산업의 미래와 캐나다의 독자적인 통상정책, 프랑스어와 문화정책까지 포함하는 문제로 확대되면서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캐나다 정부는 미국과의 교역 관계가 경제에 미치는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핵심 산업과 독자적인 무역정책, 언어와 문화 보호정책을 희생하면서까지 합의를 체결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이 예고한 추가 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캐나다 제조업과 수출기업에 상당한 부담이 예상되는 가운데, 양국이 향후 협상을 재개할 수 있을지와 이번 무역 갈등이 캐나다 경제 및 퀘벡 산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