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현 (上弦)
상현 (上弦)
나희덕
차오르는 몸이 무거웠던지
새벽녘 능선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神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으니!
때로 그녀도 발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눈 오는 지도
눈 오는 지도
윤동주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 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겨울 강가에서
겨울 강가에서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눈보라가 치는 날
눈보라가 치는 날
(국토 21)
조태일
별안간 눈보라가 치는 날은
처음엔 풍경들은 풍경답게 보이다가는
그 형체들은 끝내 소리도 없이 묻힌다.
눈보라가 치는 날은 술을 마시자
술을 마시되 체온을 생각해서 마시자
눈보라가 치는...
공존의 이유 12
공존의 이유 12
조병화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
작별을 하세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세
너만이라든지
우리들만이라든지
이것은 비밀이라든지
같은 말들은
하지 않기로 하세
내가 너를 생가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새
새
박남수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죽지에 파묻고
따스한 체온(體溫)을 나누어 가진다.
새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존 던(John Donne)
사람 혼자서 스스로 섬이 될 수는 없나니;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대양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네.
한 줌 흙덩이가 바닷물에...
늙은 비의 노래
늙은 비의 노래
마종기
나이 들면 사는 게 쉬워지는 줄 알았는데
찬비 내리는 낮은 하늘이 나를 적시고
한기에 떠는 나뭇잎 되어 나를 흔드네.
여기가 희미한 지평의 어디쯤일까.
사선으로 내리는 비...
박꽃
박꽃
신대철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벌떼 같은 사람은 잠 들고
침을 감춘 채
뜬소문도 잠 들고
담비들은 제...
도토리를 줍는, 저 사람
도토리를 줍는, 저 사람
정끝별
툭 툭 가을 깊이 못질을 하듯 도토리가
버릴 거 다 버린 상수리 숲에 쌓이면
체머리 흔들며 누가 이 숲에 와
저토록 헐벗은 잎새와 가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