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나꽃 분서(焚書)
칸나꽃 분서(焚書)
신미나
절명을 꿈꾼들 저 꽃 같이는 심장을 내걸 수 없었네
계절은 매번 色 다른 변절을 꿈꾸어 왔으므로
이제 나를 거쳐 간 연애는 미신이 되었다
돌아본들 유산 후에...
그 집 앞 능소화
그 집 앞 능소화
이현승
1.
이를테면 제 집 앞뜰에 능소화를 심은 사람의 마음이 그러했을 것이다. 여름날에, 우리는 후두둑 지는 소나기를 피해 어느 집 담장 아래서 다리쉼을...
밥상 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기에는
밥상 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기에는.
백상웅
우리 가족의 밥상은 반찬이 적을 때도
첩첩산중.
낫을 휘두르고 괭이질을 해야 건널 수 있었지.
밥상의 가운데는 모닥불을 피워 냄비를 걸었던 흔적,
우리가 둘러앉아 가죽을...
능소화
능소화
문성해
담장이건 죽은 나무건 가리지 않고 머리를 올리고야 만다
목 아래가 다 잘린 돼지 머리도 처음에는 저처럼 힘줄이 너덜거렸을 터
한 번도 아랫도리로 서본 적 없는 꽃들이
죽은...
바뀐 신발
바뀐 신발
천종숙
잠시 벗어둔 신발을 신는 순간부터
남의 집에 들어온 것처럼 낯설고 어색했다
분명 내 신발이었는데
걸을 때마다 길이 덜커덕거렸다
닳아있는 신발 뒤축에서
타인의 길이 얽혔다
똑같은 길을 놓고 누가
내 길을...
나비 그림에 쓰다
나비 그림에 쓰다
허영숙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은 다 꽃길이라 믿었던 시절 득음한 꽃들의 아우성에 나도 한 때 꽃을 사모하였다 꽃을 사모하니 저절로 날개가...
물소리를 듣다
물소리를 듣다
나희덕
우리가 싸운 것도 모르고
큰애가 자다 일어나 눈 비비며 화장실 간다
뒤척이던 그가
돌아누운 등을 향해 말한다
당신...... 자? ......
저 소리...
고래의 꿈
고래의 꿈
송찬호
나는 늘 고래의 꿈을 꾼다
언젠가 고래를 만나면 그에게 줄
물을 내뿜는 작은 화분 하나도 키우고 있다
깊은 밤 나는 심해의 고래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추고
그들이 동료를 부르거나...
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하기로 했다
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하기로 했다
이정록
금강산 관광기념으로 깨진 기왓장쪼가리를 숨겨오다 북측출입국사무소 컴퓨터 화면에 딱 걸렸다. 부동자세로 심사를 기다린다. 한국평화포럼이란 거창한 이름을 지고 와서 이게...
꽃살문 – 이정록
꽃살문
이정록
꽃에는 정작 방년이라는 말이 없다네
그래, 천년만년 꽃다운 얼굴 보여주겠다고
누군가 칼과 붓으로 나를 피워놓았네만
그 붓끝 떨림이며 칼자국 바람에 다 삭혀내야
꽃잎에 나이테 서려 무는 방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