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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6월 11, 2026

눈사람의 시 – 문성해

눈사람이 홀로 밤을 맞고 있다 저런 눈사람으로 골목에 나앉아 있어 본 적 있는가 세상의 집이란 집은 모두 제 가족을 끌어안고 도무지 모르는 빛으로 동그랗게 불 밝히고 내겐 더 이상...

사유하는 텔레비전 – 우대식

우리 집 뒷산에 누군가 가전제품을 버리기 시작하면서 텔레비전이 무려 열 대 가까이 버려졌다. 어떤 놈은 모로 처박히고 어떤 놈은 나무 둥치에 버젖이 걸터앉아 있기도...

오래된 일기 (故 김근태 고문님 영전에 바침) – 강미영

나는 그를 모른다 왜 그가 붙들려 가는지 1990년 5월14일자 한겨례 신문 1면의 김근태 씨 수 십 아니 수 백의 험악한 장정들에 둘러싸여 낚아 채여서 개돼지처럼 그가 또 도살장으로...

다시 태어나 꽃으로

그리웠어요 고향의 밤하늘이 머리위로 날리던 풀내음이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어머니의 웃음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의 체온이   모진 운명과 힘없는 나라란 굴레에서 어느 곳에도 안식하지 못한 채...

지심도 동백 – 이동훈

동백꽃 보러 지심도에 갔다가 동백 잎사귀만 들고 나왔다 그 푸름이 탐이 나서 골방 문에 붙여 놓으니 잎자루가 몸통이 되고 잎맥이 가지가 되어 온전히 동백 한 그루가 되었다 동백은 좀체...

폭설 – 윤제림

싸락눈으로 속삭여봐야 알아듣지도 못하니까 진눈깨비로 질척여봐야 고샅길도 못 막으니까 저렇게 주먹을 부르쥐고 온몬을 떨며 오는 거다. 국밥에 덤벼봐야 표도 안 나니까 하우스를 덮고, 양조장 트럭을 덮는 거다. 낯모르는 얼굴이나...

물소뿔을 불다 – 이선이

물소뿔을 불다   이선이   티벳을 가야겠다는 손금 같은 사연 담은 엽서 한 장 물끄러미 내다보는 오동나무 잎새 사이로 물소 한 마리 걸어나왔다   유적지 가을하늘을 돌아나가는 바람소리 들릴 듯한 눈망울이 멀뚱하다   저 물소와 함께...

여우비 – 류기봉

여우비   류기봉   채마밭에 알타리무꽃이 진다 아버지의 손등으로 떨어지는 가을 햇살 내가 여주 은모래 강가에서 만나 눈시울 젖던 어둠 속을 뛰쳐나온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자 내 목숨이 흔들린다 밭두렁에 고꾸라진 땀에 젖는 농부의 어깨...

하루의 가슴 – 김어준

하루의 가슴 김어준 잃어버린 시간들 하늘을 가득 품은 숨소리를 푸르게 채색하고 있다. 난 피곤한 자색 유혹을 떨치고 하늘을 좇아 시간을 오르려한다. 그리고 걷는다 뒤뚱뒤뚱 늦가을녘의 허수아비마냥 바람에 기대어. 허나 외치리라, “난 쫓아가는 거야 너처럼 기다리는 게 아냐.” 바람은 동그란...

내 가슴 빈터에 네 침묵을 심는다 – 김정란

내 가슴 빈터에 네 침묵을 심는다   김정란   네 망설임이 먼 강물소리처럼 건네왔다 네 참음도 네가 겸손하게 삶의 번잡함 쪽으로 돌아서서 모르는 체하는 그리움도   가을바람 불고 석양녘 천사들이 네 이마에 가만히 올려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