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의 꽃말 – 김승해
냉이의 꽃말
김승해
언 땅 뜷고 나온 냉이로
된장 풀어 국 끓인 날
삼동 끝 흙빛 풀어진 국물에는
풋것의 향기가 떠 있는데
모든 것 당신에게 바친다는 냉이의 꽃말에
찬 없이도 환해지는...
동백꽃 화인 – 정재록
동백꽃 화인
정재록
선창가 뒷골목의 동백여인숙 비닐 장판에
800℃짜리 동백 한 송이 졌던가 보다
보일러의 파이프 자국이 물결치는 노르께한 비닐 바닥에
섬처럼 던져진 까만 점 하나
아까 다방에서 티켓 끊어...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某 月 某 日 의 별자리 – 황학주
某 月 某 日 의 별자리
황학주
알전구가 나간
찬 방 안에
파도소리 아물 때까지
별이 빛났다
한때 손이 닿던 기억들은
별자리 속에
나뭇결만 남은 것처럼
높이, 어두운 채로
반질거린다
내가 굴복하기 전에
이미 내 마음을...
꽃 – 김형주
꽃
김형주
내 靈魂(영혼)이 타오르는 날이면
가슴앓는 그대 庭園(정원)에서
그대의 온 밤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꽃으로 설 것이다.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짙은 입김으로 그대...
사랑은 참 과학적이야 꽃이 딱 피는 근거처럼 – 김형주
사랑은 참 과학적이야
꽃이 딱 피는 근거처럼
김형주
섣부르다 싶은 어떤 감정이
몸 안에 감염됐다가
어디론가 숨었다
무엇이라고 부를까
교감신경의 의문스런 팽창과
적혈구의 쓸쓸한 농도가
마찰 없이 비벼지는 것
내가 맛있어지는 찰나랄까
우주적으로 말해
나를...
평화의 대장정 – 제주 강정마을 – 김희정
평화의 대장정 -제주 강정마을
김희정
임진각에서 목포를 거쳐 제주까지
우리는 걷는다
평화의 씨앗을 품고 걷고 또 걷는다
베낭에 담은 사연들을 온 몸으로 안고
제주도를 향해
평화의 섬을 향해, 강정으로 간다
칼바람도...
병풍 속의 화원 -신사임당의 초충도병草蟲圖屛 향일화
병풍 속의 화원
-신사임당의 초충도병草蟲圖屛
향일화
지상에 없는 당신을 읽기로 합니다.
당신이 옮긴 세상은
어쩜 저리도 음전한지요
가녀린 붓의 흘림체로 일구던 텃밭엔
온통 봄 화색이 돌았지요
눈시울이 항시 붉었던 맨드라미, 양귀비꽃들이
주인처럼 터를...
하루만의 위안 – 조병화
하루만의 위안
조병화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시방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 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월인보 (月印譜) – 위선환
월인보
(月印譜)
위선환
뉘우쳤고, 며칠 더 뉘우친다
내 몸에 달빛 밝다 희고 가는 실핏줄과 토막 난 뼈다귀들,
등줄기에 금 그어진 길고 깊은 손톱자국까지 낱낱이 비친다
갈빗대 사이로 달빛 새어들던 외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