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 – 나희덕
비 오는 날에
나희덕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 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 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눈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목어2 – 위선환
목어 2
위선환
어떤 물고기는 바싹 말려서 공중에 매달아두고 때리는가. 은비늘 몇 점이 부서져 내리고 있다
너왓장 들추듯 물비늘을 들추고 들여다본 강바닥 잔돌밭에서 나무고기 한 마리가 튀어...
치매 진행 중인 엄마를 위한 – 김형주
치매 진행 중인 엄마를 위한
김형주
수박 한 통이 굴러간다
꼭지 끝 파인 속살에서
꽃물 같은 기억을 흘리며 뛰어간다
추상화처럼 꼬불꼬불한,
야속한 골목길 어두워져 가고
딴짓하다 엄마 심부름 늦은 아이,
달려가다 어둠에...
K읍기행(K邑紀行) – 노향림
K읍기행(K邑紀行)
노향림
오랜만에 만나는 분위기.
하나의 선(線)이 되어 평야(平野)가 드러눕는다.
일대(一帶)는 무우밭이 되어
회색집들을 드문 드문
햇볕 속에 묻어 놓고
몇 트럭씩
논밭으로 실려나가는...
고등어 자반 – 오영록
고등어 자반
오영록
좌판에 진열된 간 고등어
큰 놈이 작은 놈을 껴안고 있다
넓은 바다를 헤엄치던 수많은 인연 중에
전생에 부부의 연이었던지 죽어도 한 몸이다
죽음의 구속으로 얻어낸 저 모진...
사랑 한번 안 해본 것처럼 – 박종명
사랑 한번 안 해본 것처럼
박종명
비가
내린다
입 안에서만 맴돌던 말
싹 씻어서 흐른다
물래 열어둔 창문에
사정없이 달려드는 비
주르륵 흐르다가
그만 들킨다
사랑 한번 안 해본 것처럼
-사랑한다고 말 하기 전에도 그것은...
무중력 저울 – 이재무
무중력 저울
이재무
그는 달고 재는 일로 세상이치 궁구하던 자
꼼꼼하게 저를 다녀가는 세세한 차이들
눈금으로 읽어내 존재들 가치를 증명해 왔다
슬쩍 바람이 몸 얹기만 해도
파르르 진저리 치며...
畵家 뭉크와 함께 – 이승하
畵家 뭉크와 함께
이승하
어디서 우 울음소리가 드 들려
겨 겨 견딜 수가 없어 나 난 말야
토 토하고 싶어 울음소리가
끄 끊어질 듯 끄 끊이지 않고
드 들려와
야 양팔을...
뼈다귀해장국에 대하여 – 이성목
뼈다귀해장국에 대하여
이성목
몸이 먼저 아픈 것이 사랑이다.
그대, 갈비뼈 같은 애인을 만나거든
시장골목 허름한 밥집으로 가라
세상이 다 버릴 것 같았던 뼈를 거두어
세상이 다 버릴 것 같았던 우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