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밥상 – 정병근
쓸쓸한 밥상
정병근
아내가 늦은 밥상을 차려온다
저 여자 어디서 보았다
밥상을 껴안고 뒤뚱뒤뚱 걸어와
내 앞에 퍽, 엎어졌다 일어서는 여자의
때 묻은 뒤꿈치가 눈에 밟힌다
국을 뜨고 밥을 먹는다
시큼하고...
밥풀 – 이기인
밥풀
이기인
오늘 밥풀은 수저에서 떨어지지 않네
오늘 밥풀은 그릇에서 떨어지지 않네
오늘 밥그릇엔 초저녁 별을 빠뜨린 듯
먹어도 먹어도 비워지지 않는 환한 밥풀이 하나 있네
밥을 앞에 놓은 마음이...
홀수의 감정
홀수의 감정
서안나
홀수는 왜 왼쪽을 향하고 있는 걸까요
왼쪽은 외로움의 기원입니다.
홀수들의 감정은 왼쪽에서 시작됩니다.
숫자를 처음 만든 아라비아 사내, 1이라 쓰고 앞발을 핥는 낙타의 혀처럼 순해졌을 겁니다...
참, 멀다 – 나호열
참, 멀다
나호열
한 그루 나무의 일생을 읽기에 나는 성급하다
저격수의 가늠쇠처럼 은밀한 나무의 눈을 찾으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창을 열어 보인 적 없는 나무
무엇을 품고 있기에 저렇게...
북어, 바람을 필사하다 – 송종규
북어, 바람을 필사하다
송종규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가난한 애인들이 종이컵을 감싸 안는 겨울 밤에
성에 낀 창가에 별빛이 달려와 수북수북 쌓이는 집요한 밤에
넘기지 못한 페이지처럼 낯선...
내가 대팻집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 유강희
내가 대팻집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유강희
내가 대팻집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생각해낸 건
이 나무 근처에 오리나 치며 살아야겠다 였다
더 불리지도 더 줄이지도 않으며
내 힘 닿은...
비 오는 날에 – 나희덕
비 오는 날에
나희덕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 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 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눈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목어2 – 위선환
목어 2
위선환
어떤 물고기는 바싹 말려서 공중에 매달아두고 때리는가. 은비늘 몇 점이 부서져 내리고 있다
너왓장 들추듯 물비늘을 들추고 들여다본 강바닥 잔돌밭에서 나무고기 한 마리가 튀어...
치매 진행 중인 엄마를 위한 – 김형주
치매 진행 중인 엄마를 위한
김형주
수박 한 통이 굴러간다
꼭지 끝 파인 속살에서
꽃물 같은 기억을 흘리며 뛰어간다
추상화처럼 꼬불꼬불한,
야속한 골목길 어두워져 가고
딴짓하다 엄마 심부름 늦은 아이,
달려가다 어둠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