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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6월 11, 2026

데칼코마니 – 최금진

데칼코마니 -새장- 최금진 나는 거울을 내려놓는다 당신은 털 빠진 목을 내밀어 새장 밖을 내다본다 손을 넣어 당신의 긴 머리카락을 벗겨준다 깃털이 졸음처럼 쏟아져내린다 나는 당신과 닮은 새 한 마리를 풀어 놓는다 잠에서...

가을예언 – 김백겸

  가을 예언   김백겸   낮잠을 자는 인생의 오후에 까치가 몰려와 아우성을 치는군요 창 밖에 단풍나무 잎사귀들이 자욱히 떨어졌습니다. 하늘에 양떼구름들이 동에서 서로 은하수처럼 뻗어있고요 바람은 목자의 지팡이를 지나 초원을 가로지르고...

공광규 – 되돌아보는 저녁

  되돌아보는 저녁 공광규   자동차에서 내려 걷는 시골길 그동안 너무 빨리 오느라 극락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디서 읽었던가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가다가 잠시 쉰다고 영혼이 뒤따라오지 못할까봐 발들을 스치는 메뚜기와 개구리들 흔들리는 풀잎과 여린 꽃들 햇볕에...

야생사과 – 나희덕

  야생사과   나희덕   어떤 영혼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붉은 절벽에서 스며 나온 듯한 그들과   목소리는 바람결 같았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흘러가는 구름과 풀을 뜯고 있는 말, 모든 그림자가 유난히 길고...

쓸쓸한 밥상 – 정병근

쓸쓸한 밥상   정병근   아내가 늦은 밥상을 차려온다 저 여자 어디서 보았다   밥상을 껴안고 뒤뚱뒤뚱 걸어와 내 앞에 퍽, 엎어졌다 일어서는 여자의 때 묻은 뒤꿈치가 눈에 밟힌다   국을 뜨고 밥을 먹는다 시큼하고...

밥풀 – 이기인

밥풀 이기인   오늘 밥풀은 수저에서 떨어지지 않네 오늘 밥풀은 그릇에서 떨어지지 않네 오늘 밥그릇엔 초저녁 별을 빠뜨린 듯 먹어도 먹어도 비워지지 않는 환한 밥풀이 하나 있네 밥을 앞에 놓은 마음이...

홀수의 감정

홀수의 감정 서안나   홀수는 왜 왼쪽을 향하고 있는 걸까요 왼쪽은 외로움의 기원입니다. 홀수들의 감정은 왼쪽에서 시작됩니다. 숫자를 처음 만든 아라비아 사내, 1이라 쓰고 앞발을 핥는 낙타의 혀처럼 순해졌을 겁니다...

참, 멀다 – 나호열

참, 멀다   나호열   한 그루 나무의 일생을 읽기에 나는 성급하다 저격수의 가늠쇠처럼 은밀한 나무의 눈을 찾으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창을 열어 보인 적 없는 나무 무엇을 품고 있기에 저렇게...

북어, 바람을 필사하다 – 송종규

북어, 바람을 필사하다   송종규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가난한 애인들이 종이컵을 감싸 안는 겨울 밤에 성에 낀 창가에 별빛이 달려와 수북수북 쌓이는 집요한 밤에 넘기지 못한 페이지처럼 낯선...

내가 대팻집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 유강희

내가 대팻집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유강희   내가 대팻집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생각해낸 건 이 나무 근처에 오리나 치며 살아야겠다 였다 더 불리지도 더 줄이지도 않으며 내 힘 닿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