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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5월 18, 2026

쓸쓸한 밥상 – 정병근

쓸쓸한 밥상   정병근   아내가 늦은 밥상을 차려온다 저 여자 어디서 보았다   밥상을 껴안고 뒤뚱뒤뚱 걸어와 내 앞에 퍽, 엎어졌다 일어서는 여자의 때 묻은 뒤꿈치가 눈에 밟힌다   국을 뜨고 밥을 먹는다 시큼하고...

밥풀 – 이기인

밥풀 이기인   오늘 밥풀은 수저에서 떨어지지 않네 오늘 밥풀은 그릇에서 떨어지지 않네 오늘 밥그릇엔 초저녁 별을 빠뜨린 듯 먹어도 먹어도 비워지지 않는 환한 밥풀이 하나 있네 밥을 앞에 놓은 마음이...

홀수의 감정

홀수의 감정 서안나   홀수는 왜 왼쪽을 향하고 있는 걸까요 왼쪽은 외로움의 기원입니다. 홀수들의 감정은 왼쪽에서 시작됩니다. 숫자를 처음 만든 아라비아 사내, 1이라 쓰고 앞발을 핥는 낙타의 혀처럼 순해졌을 겁니다...

참, 멀다 – 나호열

참, 멀다   나호열   한 그루 나무의 일생을 읽기에 나는 성급하다 저격수의 가늠쇠처럼 은밀한 나무의 눈을 찾으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창을 열어 보인 적 없는 나무 무엇을 품고 있기에 저렇게...

북어, 바람을 필사하다 – 송종규

북어, 바람을 필사하다   송종규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가난한 애인들이 종이컵을 감싸 안는 겨울 밤에 성에 낀 창가에 별빛이 달려와 수북수북 쌓이는 집요한 밤에 넘기지 못한 페이지처럼 낯선...

내가 대팻집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 유강희

내가 대팻집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유강희   내가 대팻집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생각해낸 건 이 나무 근처에 오리나 치며 살아야겠다 였다 더 불리지도 더 줄이지도 않으며 내 힘 닿은...

비 오는 날에 – 나희덕

비 오는 날에   나희덕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 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 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눈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목어2 – 위선환

목어 2   위선환   어떤 물고기는 바싹 말려서 공중에 매달아두고 때리는가. 은비늘 몇 점이 부서져 내리고 있다 너왓장 들추듯 물비늘을 들추고 들여다본 강바닥 잔돌밭에서 나무고기 한 마리가 튀어...

치매 진행 중인 엄마를 위한 – 김형주

치매 진행 중인 엄마를 위한   김형주   수박 한 통이 굴러간다 꼭지 끝 파인 속살에서 꽃물 같은 기억을 흘리며 뛰어간다 추상화처럼 꼬불꼬불한, 야속한 골목길 어두워져 가고 딴짓하다 엄마 심부름 늦은 아이, 달려가다 어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