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칸나꽃

칼과 칸나꽃

최정례

너는 칼자루를 쥐었고

그래 나는 재빨리 목을 들이민다

칼자루를 것은 내가 아닌 너이므로

휘두르는 칼날을 바라봐야 하는 것은

네가 아닌 나이므로

너와 이야기의 끝장에 마침

지고 있는 칸나꽃이 있다

칸나꽃이 칸나꽃임을 이기기 위해

칸나꽃으로 지고 있다

문을 걸어잠그고

슬퍼하자 실컷

첫날은 슬프고

둘째 날도 슬프고

셋째 또한 슬플 테지만

슬픔의 첫째 날이 슬픔의 둘째 날에게 무너지고

슬픔의 둘째 날이 슬픔의 셋째 날에게 무너지고

슬픔의 셋째 날이 다시 쓰러지는

슬픔의 넷째 날이 되어 바라보자

            어찌 생각하면 속된말로 채이는 쪽이 서럽다고 여기 저기다 대고 징징 거리지 않는다. 문을 걸어잠그고 홀로 슬퍼하자고 다짐하는 보면, 또한 그이별의 슬픔이 하루, 이틀, 사흘지나면 거리를 두고 바라볼 있게 된다는 이미 채득한 시인을 독자는 ‘cool’하다고 느낀다. 칼로 무쪽 자르듯 당한 이별의 순간에 칸나꽃이 지고 있다.  그냥 지는 것이 아니고 존재를 이기기 위해 지고있다. 얼마나 멋지게 표현된 허물어지는 자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