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C
Montreal
금요일, 7월 17, 2026

집과 길

집과 길 김명인 집 밖에 만 리를 두고 천 리 안쪽에서 그 집을 그리워한다 이 망원(望遠)은 아침부터 불볕에 이끌려 가는 거대한 초록 짐승 떼의 이동을 바라보면서 눈 시린 햇살 아래...

동거

동거 생각난다 신당동 중앙시장 팥 적은 붕어빵과 곱창으로 넘긴 그해 겨울의 저녁과 아침. 시골 여상 출신의 그대가 졸음 쏟아지는 미싱대에서 주판알 대신 올리고 내리던 기래빠시...

자네트가 아픈 날 2

자네트가 아픈 날 2   박상순   나는 항아리를 만든다. 미술대학을 다닌 솜씨로, 이제는 다 틀어져버린 솜씨로, 틀어진 항아리를 만든다. 내가 주둥이를 최대한 작게 마감할 동안 그녀는 약을...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최영미 너의 인생에도 한번쯤 휑한 바람이 불었겠지   바람에 갈대숲이 누울 때처럼 먹구름에 달무리질 때처럼 남자가 여자를 지나간 자리처럼 시리고 아픈 흔적을 남겼을까   너의 몸 골목골목 너의 뼈 굽이굽이 상처가 호수처럼 괴어...

작은 짐승

작은 짐승 신석정   난(蘭)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 소나무 / 참나무 /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난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황야의 건달

황야의 건달 고영 어쩌다가, 어쩌다가 몇 달에 한 번꼴로 들어가는 집 대문이 높다 용케 잊지않고 찾아온 것이 대견스럽다는 듯 쇠줄에 묶인 진돗개조차 꼬리를 흔들며 아는 체를 한다...

다시, 서출지

다시, 서출지 이종암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못의 아가리 위로 저 연꽃은 왜 피는지 그냥 못 둑에 서서 입만 벌어지다 다들 돌아간다 천 년 묵은...

벚꽃 지는 날

벚꽃 지는 날   이시환   간밤에 마음과 마음이 통했는가?   아주 가벼웁게 바람의 잔등을 올라타는 저 수수만의 꽃잎들이 추는 군무(群舞)가 마침내 반짝거리는 큰 물결을 이루어가는 것이,   그 모습 눈이 부셔 끝내...

이제 이 땅은 썩어만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신경림 이제 이 땅은 썩어만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봄이 되어도 꽃이 붉지를 않고 비를 맞고도 풀이 싱싱하지를 않다. 햇살에 빛나던 바위는 누런 때로 덮이고 우리들 어린 꿈으로...

가지가 담을 넘을 때

정끝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