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여인숙
파도 여인숙
안시아
어디선가 본 적 있지 않아요?
창문마다 네모랗게 저당 잡힌 밤은
가장 수치스럽고 극적이에요
담배 좀 이리 줘요
여기는 바다가 너무 가까워요
이 정도면 쓸만하지 않나요?
다 이해하는...
우리들의 새 대통령
우리들의 새 대통령
임보
수많은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비상등을 번쩍이며 리무진으로 대로를 질주하는 대신 혼자서 조용히 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골목길을 즐겨 오르내리는 맑은 명주 두루마기를 받쳐입고 낭랑히...
겨울 만다라
겨울 만다라
임영조
대한 지나 입춘날
오던 눈 멎고 바람 추운 날
빨간 장화 신은 비둘기 한 마리가
눈 위에 총총총 발자국을 찍는다
세상 온통...
고 풍 의 상(古風衣裳)
고 풍 의 상(古風衣裳)
조 지 훈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附椽) 끝 풍경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 밤이...
아름다운 반란
아름다운 반란
주병율
겨울 햇볕에 쏘인 창가의 온기에 붙어서
하얀 눈송이 같은 꿈도 없이 잠이 든다.
어제를 잊고 아침을 잊고
노동에 부르트던 손발을 잊었으므로
잠을 자면서 나는
깊고 투명한 강이 흘러가는...
동화-파랑새
동화-파랑새
성미정
처음부터 파랑새는 아니었어 당신도 저런 새를 갖고 싶다면 좋은 방법을 알려주지 위험을 무릅쓰고 추억의 나라나 밤의 나라 따위를 헤맬 필요는 없어 우선 새를...
사평역(沙平驛)에서
사평역(沙平驛)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가로등
가로등
변창섭
시방 창밖은 한밤중 카니발이 한창이다. 가로등 불빛에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살과 살을 부벼대는 하루살이 불나방같이 全裸의 눈발은 벌겋게 가로등을 핥는데
창문을 열고 다가가면 바깥은 쌔앵쌔앵...
풀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
고 은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