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출지
다시, 서출지
이종암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못의 아가리 위로 저 연꽃은 왜 피는지
그냥 못 둑에 서서 입만 벌어지다
다들 돌아간다
천 년 묵은...
벚꽃 지는 날
벚꽃 지는 날
이시환
간밤에 마음과 마음이 통했는가?
아주 가벼웁게 바람의 잔등을 올라타는
저 수수만의 꽃잎들이 추는 군무(群舞)가
마침내 반짝거리는 큰 물결을 이루어가는 것이,
그 모습 눈이 부셔 끝내...
이제 이 땅은 썩어만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신경림
이제 이 땅은 썩어만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봄이 되어도 꽃이 붉지를 않고
비를 맞고도 풀이 싱싱하지를 않다.
햇살에 빛나던 바위는 누런 때로 덮이고
우리들 어린 꿈으로...
가지가 담을 넘을 때
정끝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청년화가 L을 위하여-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햄버거를 먹으며
햄버거를 먹으며
오세영
사료와 음식의 차이는
무엇일까.
먹이는 것과 먹는 것 혹은
만들어져 있는 것과 자신이 만드는 것.
사람은
제 입맛에 맞춰 음식을 만들어 먹지만
가축은
싫든 좋든 이미 배합된 재료의 음식만을
먹어야 한다.
김치와...
다친 새를 위하여
다친 새를 위하여
복효근
늦은 저녁 숲에
날개를 다쳐 돌아오는 새 있다
무리에서 저만치 처져서
어느 이역의 하늘을 떠돌다 오는지
꺼져가는 석양이 아쉬워
별 가까운...
바늘잎의 별
바늘잎의 별
박상순
내가 창고 안에 들어서는 순간 별들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별들은 하나같이 바늘이 돋혀 있었고 나는, 그 별들에 찔리는 바늘받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별의날카로운 바늘이 박혀...
남도의 밤 식탁
남도의 밤 식탁
송수권
어느 고샅길에 자꾸만 대를 휘며
눈이 온다.
그러니 오려거든 삼동(三冬)을 다 넘겨서 오라
대밭에 죽순이 총총할 무렵에 오라
손에 부채를 들면 너는 남도 한량이지
죽부인(竹夫人)을 껴안고 오면...
삽의 전쟁
삽의 전쟁
박일환
공병대 시절, 눈만 뜨면 삽을 드는 게 일이었으니
삽질이라면 나도 제법 할 줄 알지
삽으로 흙을 떠서 던지면
삽 모양 그대로 흙이 날아가기까지
아침마다 굽은 손가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