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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6월 10, 2026

무슬림 성전으로 가는 풍 나무 길

  무슬림 성전으로 가는 풍 나무 길   홍애니   노랗게 물든 풍 나무 가로수 아래로 화려한 사리를 입은 인도 이민자 여인이 걸어간다 까마귀들이 일제히 날아올랐을 때 어디선가 아이가...

꽃차례

  꽃차례   김명인 그가 떠나면서 마음 들머리가 지워졌다 빛살로 환한 여백들이 세찬 비바람에 켜질 당할 때 그 폭풍우 속에 웅크리고 앉아 절망하고 절망하고서 비로소 두리번거리는 늦봄의 끝자락 운동모를 눌러쓰고 몇 달 만에 앞산에...

물로 쓰는 왕희지체

  손택수 먹물인가 했더니 맹물이다 소흥 왕희지 사당 앞 노인이 길바닥에서 논어 한 구절을 옮겨놓고 있다 페트 물병에 꼽은 붓으로 한 자 한 자 그어 내리는 획이 왕희지체 틀림없다 앞선 글자들이 지워지고...

놀란 강

  놀란 강 공광규 강물은 몸에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모래밭은 몸에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새들은 지문 위에 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그래서 강은 수천 리...

고등어 울음소리를 듣다

  김경주 깊은 곳에서 자란 살들은 차다 고등어를 굽다 보면 제일 먼저 고등어의 입이 벌어진다 아...... 하고 벌어진다 주룩주룩 입에서 검은 허구들이 흘러나온다 찬 총알 하나가 불...

몬트리올 사람 15

  어느 늦은 봄날 가로등은 혼자 밤을 지키기가 너무 적적해서 슬그머니 어린 포도넝쿨을 꼬드보았다. 그날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군가가 잠 안 자고 지켜본 것은...

여울목

김선우 무릉계에 와서 알았네 물에도 뼈가 있음을 파인 돌이 이끼 핀 돌 안아주고자 하는 마음 큰 돌이 작은 돌에게 건너가고자 하는 마음이 안타까워 물은 슬쩍 제 몸을 휘네 튕겨오르는 물방울, 돌의...

도화 아래 잠들다

  김선우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을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사랑의 기억은 흐려져 간다

  류시화 사랑의 빛 위로 곤충들이 만들어 놓은 투명한 탑 위로 이슬 얹힌 거미줄 위로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가을 나비들의 날개 짓 첫눈 속에 파 묻힌 생각들 지켜지지 못한...

겨울공화국

겨울공화국 양성우 여보게 우리들의 논과 밭이 눈을 뜨면서 뜨겁게 뜨겁게 숨쉬는 것을 보았는가 여보게 우리들의 논과 밭이 가라앉으며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으면서 불끈불끈 주먹을 쥐고 으드득으드득 이빨을 갈고 헛웃음을 껄껄걸 웃어대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