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방 한 칸

 

이시영

 

신림 7동, 난곡 아랫마을에 산 적이 있지. 대림동에서 내려 트럭을 타고 갔던가, 변전소 같은 버스를 타고 갔던가. 먼지 자욱한 길가에 루핑을 이고 엎드린 한 칸 방. 누나와 조카 둘과 나의 보금자리였지. 여름 밤이면 집 앞 실개천으로 웃마을 돈사의 돼지 똥들이 향기롭게 떠가는 것을 보며 수제비를 먹었지. 찌는 듯한 더위에 못 이겨 야산에 오르면 시골처럼 캄캄하던 동네. 개천 건너 그 동물병원 같은 보건소는 잘 있는지 몰라. 눈이 커다란 간호원에게 매일 아침 붉은 엉덩이를 내리고 스트렙토마이신을 한 대씩 맞고 다녔지. 학교가 너무 멀어 오전 수업을 늘 빼먹어야 했던 집. 아니 결핵을 앓던 나를 따스히 보살펴 주던 집. 겨울이면 루핑이 심하게 울어 조카의 어린 몸을 난로처럼 안고 자던 방. 아니 봄을 기다리던 누님과 나의 지상의 좁은 방 한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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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이란 책을 보면, 75명은 양식을 비축하고 비와 이슬을 피할 집이 있지만 나머지 25명은 그렇지 못하고 17명은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은행에 예금이 있고 지갑에 돈이 있다면 이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8명 안에 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내 집이 있는 전 세계 인구는 75프로이고 이 시에 나오는 시인의 방은 그 75프로의 집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었나 봅니다.  요새는 과도하게 민주주의와 인권을 주장하면 ‘종북’ 이라지요.  그렇다면 종북은 나보다 형편이 못해서 어려운 사람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