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원
나뭇가지에 앉았던 한 마리
새가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그리고
잎과 잎 사이로 뚫린
길을 따라
가볍게 가볍게 날아간다
나뭇가지 왼쪽에서 다시
위쪽으로
위쪽 잎 밑의
그림자를 지나 다시
오른쪽으로
그렇게 계속 뚫려있는 하나의 길로
한 마리 새가 날아간다
나뭇가지와 가지 사이로
그리고 잎과 잎 사이로
뚫려 있는 그 길
한 마리 새만 아는
그 길
한 마리 새가 사라진 다음에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그 길
이 시를 점자를 더듬듯이 손가락으로 읽는다. 한 글자씩 읽다 보면 시어들이 손가락 사이에서 자꾸 허공으로 흩어져 날아간다. 가볍고 안타깝다. 시인은 시를 통해 독자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고 독자는 아무것도 받지 못한 채 한 마리 새가 날아간 길의 중간에 오롯이 서있게 된다. 단어를 통해 은유하며 뜻을 구하지 않고 환유로 열어놓는 오규원의 ‘날 이미지’의 시가 여기 있다. 오규원 시인은 1965년 현대문학으로 세상에 나왔다.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등 많은 시집과 시론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