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호
수종사 차방에 앉아서
소리 없이 남한강 북한강의 결합을 바라보는 일
차통(茶桶)에서 마른 찻잎 덜어낼 때
귓밥처럼 쌓여 있던 잡음도 지워가는 일,
너무 뜨겁지도 않게 너무 차갑지도 않게
숙우(熟盂)에 마음 식혀내는 일,
빗소리와 그 사이 떠돌던 풍경소리도
타관(茶罐) 안에서 은은하게 우려내는 일,
차를 따르며 졸졸 물소리
마음의 먼지도 씻어내는 일,
깨끗하게 씻길 때까지 몇 번이고
찻물 어두운 내장 속에 흘려 보내는 일,
퇴수기(退水器)에 찻잔을 헹구듯
입술의 헛된 말도 남은 찻물에 소독하고
다시 한번 먼 강 바라보는 일,
나는 오늘 수종사에 앉아
침묵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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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는 일이 몸을 씻어내고 마음을 씻어내는 일이라고 가르쳐주는 시 한편 나눠보자. 세상을 먼 강 바라보듯 살 수만 있다면, 말 없이 말 전하는 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길상호 시인은 2001년’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했고 시집을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