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동백꽃, 지다 

제주섬, 동백꽃, 지다

 

변종태

 

어머니는 뒤뜰의 동백나무를 잘라버렸습니다.
젊은 나이에 뎅겅 죽어버린 아버지 생각에
동백꽃보다 붉은 눈물을 흘리며
동백나무의 등걸을 자르셨지요.
계절은 빠르게 봄을 횡단(橫斷)하는데,
끊임없이 꽃을 떨구는 동백,
붉은 눈물 떨구는 어머니, 동백꽃
목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먼 산 이마가 아직 허연데,
망나니의 칼 끝에 떨어지던 목숨,
꼭 그 빛으로 떨어져 내리던,
붉은 눈물, 붉은 슬픔을
봄이었습니다, 분명히
떨어진 동백 위로
더 붉은 동백꽃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심장 위로 덜커덕,
쓰린 바람이 훑고 지나갑니다.
먼저 떨어진 동백꽃 위로
더 붉은 동백이 몸을 날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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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4.3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너무 많은 사람들의 한이 서려있는 섬이다. 오랜 수탈의 역사에서부터 좌우익의 이념으로 희생된 무고한 주민들의 한이 피빛 동백보다 진하다. 현기영의 ‘순이 삼촌’을 보면 그 처절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엄혹한 시절이 지나갔다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 밝혀야 할 일들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제주 출신 변종태 시인은 계간 ‘다층’ 주간이고 시집으로 ‘멕시코 행 기차는 어디서 타지’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