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열하다

조용미

한낮 시골집 마루에서 눈을 떴을 때, 아무도 없는 집 안 마당 앞의 감나무가 땡감을 달고 퍼렇게 질려있다 마당은 하얗게 하얗게 달구어져 시린 눈을 반쯤만 떴다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들은 다 어디로 갔나 누렁이도 할머니도 고모도 저 햇빛이 어디론가 데려갔나
마당 한구석의 두엄 더미는 푸욱 푹 썩어가고, 삐거덕 정지문 여는 소리에 놀란 집의 그늘은 다 움푹 한 구석에 모여 웅크리고 있다 두엄 더미 옆 돼지우리의 돼지들은 엎어져 꼼짝도 하지 않고 모두가 한통속으로 무언가에 복종하고 있다 뒤란의 장독대는 독사의 혀처럼 날름거리는 나리꽃을 두 송이 꼿꼿하게 피워놓고

한낮의 기괴한 정적은 어린 내 몸에도 달라붙어 나는 대청마루로 돌아와 고요히 엎드려 누웠다 마당은 뜨겁게 증발하고 살아 있는 것들 모두 숨을 죽이고 있는 시간, 스르르 눈꺼풀은 다시 감긴다 대낮, 햇살이 작열하는 염천의 적요에는 미묘한 악의가 숨어 있다는 걸, 섭씨 육천 도의 햇빛은 죄악을 받아들이고도 남는다는 걸 알게 된 어느 날 나의 잠은 깊었다

미투에 동참하여 문학계를 뒤흔들어놓았던 최영미 시인, 운동권에 몸담기도 했고 선거캠프에도 참여해서 부르짖는 가치과 속사정이 어떻게 다른지를 고발하고 있는 중이다. 시절이 지금은 그의 편을 들어주지만 돼지처럼 엎어져 복종해온 분노 탓일까 이번에 발간한 그의 시집의 제목은 ‘돼지들에게’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