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김명인

굴참나무가 숲을 이루었으나

저마다의 방향으로 가지를 뒤틀어서

헛갈린 형상, 뿌리를 허공에 산발한 채

모로 누운 고사목도 있다

줄이고 줄여서 몇 안 남았지만

시절은 한 그루라도 더 줄일 수 있어서

겹쳐 입은 잎들마저 허술한

누더기 숲을 나는 가로지른다

햇살이 가지를 비집고

바닥까지 잔광을 퍼질러 놓아

빈약한 초록이 아니라면 세한도풍의 전나무들도

하오의 적막과 마주하고 있음을 알겠다

숲을 읽었으나 구실이 사라진 지금

나를 밀어 여기까지 오는 것은

다짐의 형식, 그 힘마저 소진해버리면

조락의  끝자리에서 허공이나 어루만질 뿐

나는, 숲을 지키는 텃새의 나중 이웃이 되어

황혼이 잦아질 때까지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날아야 한다

어느 순간 어둠 천 근이 날개에 매달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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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시인이 2018년에 발간한 12번째 시집의 표지 제목이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이제 자연에 순응하며 다가올 일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고 읽히다.  오랫동안 꾸준히 빛나는 많은 시들을 쓰고 그 깊이와 아름다움을 전하며 살아온 세월에 독자는 빚을 지고 있다.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날아야하는 운명이라며 되도록 그 그늘이 오래 평안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