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보 (月印譜) – 위선환

월인보

(月印譜)

 

위선환

 

뉘우쳤고, 며칠 더 뉘우친다

내 몸에 달빛 밝다 희고 가는 실핏줄과 토막 난 뼈다귀들,

등줄기에 금 그어진 길고 깊은 손톱자국까지 낱낱이 비친다

 

갈빗대 사이로 달빛 새어들던 외진 몸 구석이 푸르게 비치던 시절은

뒤돌아볼 때마다 춥고, 아프고, 그때처럼

살가죽이 헌다 듬성 털이 빠진다

 

내가 비루먹은 나를 끄집고 들어가던 저 바다다

여러 개째 밑 없는 구덩이를 팠던, 주춤대다가 뒷걸음치다가 헛딛고 자주 빠지던 저 들판이다

전 수평선에, 물비늘 희게 깔린 저 물바닥에,

물 채운 들판은 수은 바른 듯 번뜩이고 천 가닥의 강줄기들이 반짝이며 흘러가는 저 지평까지

오직

달빛

찼다

 

승냥이 한 마리 나를 뜷더니 살가죽을 찢고 고개를 빼서 내 몸 밖으로 내밀고는

내가 며칠 더 뉘우치고 나서 새로 눈 뜨고 보는 하늘의

높고 둥근 달을 쳐다본다

주둥이를 치켜들고 우우 운다

 

시인이 승냥이다. 달보고 우는 한마리 짐승이다. 사는 것에 얼마나 부딪혔는지 살갗은 다 찢어지고 달빛은 갈빗대 사이로 스며든단다. 살면서 비틀거리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이건 정말 지독하다. 뉘우침이 이렇게 한 몸을 부서버린다면 그 시 또한 장엄하겠다. 위선환 시인은 2001년 ‘현대시’를 통하여 작품활동을 재개했고 2009년에 현대시 작품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