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 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게 정직하게!
성실하게 공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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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 나오는 관료는 분명 근면, 정직, 성실, 공정, 충성, 봉사… 한 사람인데 독자는 왠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사회가 원하는 대로 살았을 뿐인데, 상을 줘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뭔가가 확실히 빠져있다는 거. 마치 성실, 충실, 근면… 김일성이 근면하지 않았다면 6.25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나찌에 부역한 사람들이 충성스럽지 않았다면 2차 대전이 좀 더 빨리 끝났을 수도 있었을텐데…
김남주 시인이 자유로운 사고를 한 덕분에 감옥에 자주 피곤한 몸을 의탁할 수 밖에 없었던 건 그의 시대가 사고의 자유를 불편하게 여겼기 때문이고 그가 쓴 시들이 누군가를 쪽팔리게 만들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모든 철학자들이 주구장창 외친다. 생각하라고, 의문하라고, 왜? 라고 묻는 것을 멈추지 말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