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기형도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순수하고 뜨거워서 무모했던 기형도 시인. 자신이 가진 세포 하나 하나를 열망의 언어로 바꾸먹고 엿같은 세상을 일찌감치 벗어났던 시인.가여운 사람의 가여운 사랑만 남아 세상이 감히 들지 못하는 빈집을 기웃거리는 독자의 마음만 남겨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