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病院)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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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풍경에서 식민지 조선의 사회를 읽어내는 것은 자연스럽다.  시인은 병원의 ‘뒤뜰’ 에 있다. 폭력으로 점령당한 것에는 지리적 공간뿐 아니라 이성의 공간도포함된다.  그 사회는 그래서 뒤뜰 이고 병원이고 윤동주는 병 없이 앓는 자다.  그러니 의사는 병이 없다고 한단다. 여기서 여자와 윤동주는 객체가 되었다 합체가되었다…한다. 타인의 병이 나에게 투영되고 내가 타인과 합체가 되고, 아픔이 공유되고 그 아픔이 마침내 시가 된다.

시는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에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