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김명인
구릉을 뒤덮은 샛노란 유채 꽃밭이어도
구름이 차지하면 그늘진 방석
누구에게나 환한 화원은 아니었다
무너미 타 넘고 오는 어스름 속
널 세워두고 혼자 돌아서는 저녁
흔들리는 가지에나 걸쳐놓은 바람이
빈터를 두른 녹슨 철조망에도 붐비고 있다
문득 그 자리에 모자를 걸어둔 채 떠나왔다는 생각에
갑자기 머리가 으스스해져 한기에 떤다
해마다 이맘때면 화관(花冠)을 고쳐 쓰는
대지의 습관처럼 거기 어딘가 폭죽 매단
수만 꽃송일 엮어 민대머리에 얹는
나비 날개로나 져 나르는 구름 모자가 있었는지
내 몸에 돋아난 가시로
널 찌르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꺾인 가지 하나 자꾸만
허공 속으로 뻗어가자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