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그늘 아래서

오세영

맑은 날 네 편지를 들면

아프도록 눈이 부시고

흐린 날 네 편지를 들면

서럽도록 눈이 어둡다

아무래도 보이질 않는구나

네가 보낸 마지막 한 줄

무슨 말을 썼을까

오늘은 햇빛이 푸른 날

라일락 그늘에 앉아 네 편지를 읽는다

흐린 시야엔 바람이 불고

꽃잎은 분분히 흩날리는데

무슨 말을 썼을까

날리는 꽃잎에 가려 끝내

읽지 못한 마지막 그 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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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한 장면처럼 햇빛이 환하게 내려앉는 시 한편 읽어보자. 어떤 사람은 이 시를 회화적이라고 부른다. 읽다보면 그림처럼 색깔이 펼쳐지는 까닭일게다. 그래서 독자도 따라서 눈이부시다. 이제는 노안이되어 어른거리는 편지를 들고 아름다운 어느날 아직 읽지 못한 마지막 한 줄은 아마 남아있는 생의 끝자락이 아닐까. 오세영 시인은 현대문학으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시간의 쪽배’, ‘봄은 전쟁처럼’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