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기차
문정희
어떤 여행도 종점이 있지만
이 여행에는 종점이 없다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기 전에
한 사람이 기차에 내려야 할 때는
묶인 발목 중에 한쪽을 자르고 내려야 한다
오, 결혼은 중요해
그러나 인생은 더 중요해
결혼이 인생을 흔든다면
나는 결혼을 버리겠어
묶인 다리 한쪽을 자르고
단호하게 뛰어내린 사람도
이내 한쪽 다리로 서서
기차에 두고 온 발목 하나가
서늘히 제 몸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서둘러 다음 기차를 또 타기도 한다
때때로 차창 밖을 내다보며
그만 이번 역에서 내릴까 말까
아이들의 손목을 잡고
선반에 올려놓은 무거운 짐을 쳐다보다가
어느덧 노을 속을
무슨 장엄한 터널을 통과하는
종점이 없어 가장 편안한 이 기차에
승객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나름대로의 환상에 끌려들었던걸까… 대부분 결혼의 파국은 아주 사소한 일들이 쌓여서 생기더라는 것이 겪어본 사람들의 입장이다. 결혼이라는 기차는 달리는데 뛰어내리려면 발목 하나 두고 내려야 한다는 시인이 말이 아프다.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뛰어내리자니 너무 높고, 그대로 있자니 너무 뜨거운’ 입장이라면 이 시에 공감이 갈까. 문정희 시인은 ‘월간문학’으로 세상에 나왔고 시집으로 ‘찔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