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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6월 10, 2026

실업

  여림    즐거운 나날이었다 가끔 공원에서 비둘기 떼와   낮술을 마시기도 하고 정오 무렵 비둘기 떼가 역으로   교회로 가방을 챙겨 떠나고 나면 나는 오후...

붉은 작업실 –앙리 마티스의 ‘ Red Studio’ 캔버스 유채

붉은 작업실 --앙리 마티스의 ‘ Red Studio’ 캔버스 유채 김은자 붉은 해마의 울음을 희석시켜 줄 수 있는 것은 빛뿐이다 이제 책상 위 종이천사에게 시침 없는 벽시계를 말해줘도 좋겠다 먹다...

괜찮아

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 버릴가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암호 해독

  김은자   보내주신 E-메일 잘 받아 보았습니다 아쉽게도 글자가 깨어져 읽을순 없었지만 나는 생애 이보다 더 멋진 편지를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 나의 시가 한층 간결해 질 것 같은 예감입니다 글자가...

바람의 파이터

바람의 파이터 정봉희 울부짖음에는 필시 이유가 있다 목젖 아래 짐승 한 마리 키우는 까닭이다 평범하던 금요일 폭풍주의보가 발령되었고 야산 중턱 아래 삐걱거리던 나무의자가 자리를 옮겼다 폐업한 공장 옥상 위로 지나가는...

하루를 바치다

  하루를 바치다 김형오 꽃을 보면 안다 절로 맺었다 하면서 오죽하면 이리 피는 것이랴 앉은뱅이꽃 장다리꽃 잎잎이 새벽을 열고 와서 울렁울렁 피는 것을 보면 꽃술 높이 들고 꽃 가는 꽃 길따라 하루를 모두 바친다는 것 ------------------------------------------------- 꽃이...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길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못 구대현 힘줄도 없이 한 점 살점도 없이 천형처럼 감추지도 못하는 알몸으로 겨우겨우 남의 살 속에 묻혀 침묵으로 견디고 끊임없이 구부러지고 부러지는 연명 속에서 화석처럼 남겨지는 생채기 이천 년 전 광야에서 메시아란...

유리그릇에 관한 명상

  유리그릇에 관한 명상 이상옥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 몸이냐 현미경으로 비추면 실 금으로 가득할 너여 매일 새 금이 죽죽 그어지고 있는 너여 펄벅이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운위할 때 사람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