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시는 날 5

임동윤

 

이제 보겠다는 마음은 버려야 한다

사흘 밤낮 내린 눈은

모든 것의 경계를 경계 밖으로 몰아내고

모든 단단한 생각들을 무너뜨린다

 

모든 것은 지워져도 아무것도 기억할 수가 없다

오직 흰나비 떼가 몰고 오는 백색의 경보령,

헤아려 내다볼 수 없어서 귀만 조금 열려 있다

 

새 한 마리 날아오지 않는 대낮

바람이 몰고 오는 안팎은 무채색이다

숲은, 바닥까지 제 몸을 무너뜨리고

그대에게로 가는 유일한 징검다리도 지워졌다

 

아주 잘 보인다는 생각까지

다시 눈보라가 말갛게 헹구며 간다그리움 없이 살아갈 날들이 무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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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밤낮 내린 눈으로 경계도 없어지고 기억도 없어지고 그대에게 가는 징검다리도 지워졌다고 한다. 세상의 모습을 다 지워서 보겠다는 마음을 접었는데 끝내는 아주 잘 보인다고 한다. 눈발이 흰나비떼로 보이는 시인의 마음이 말갛게 행구어 졌다고 한다. 임동윤 시인은 ‘이상 문학상’, ‘만해 문학상’ 을 수상했고 시집으로는 ‘만국의 노동자여’, ‘초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