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나무 그늘 아래서
김영준
함박나무 꽃 그늘에 앉아본 적이 있는지
그 그늘의 한 소절에 기대어
익숙한 노래를 불러본 적이 있는지
그 어느 때던가
함박나무는 마약 같은 이름을 지녔다고 생각했지
함박꽃 함박꽃 하고 웅얼거려 보면
그 그늘에 뿌리 깊은 무덤처럼 몸 눕히면 알지
그리움도 사실
산맥처럼 단단한 이름이었음을
하얗게 숨 죽이며 입적(入寂)하는 새였음을 알지
현대인의 뇌구조를 흉내내서 그런가 온통 스트레스를 받아 상처 입은 단어들로 도배가 된 시의 무더기 속에서 어럽게 수묵화 같은 시 한 편 만났다.
마지막 구절이 하도 아름다와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다가 퍼왔다. 꽃나무 그늘에 몸을 눕히면 사는 것과 죽는 것은 사실 그리움이라고 그 그리움은 새 처럼 눈 감든다고 말해주는 김영준 시인은 1984년 ‘심상’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