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 하나 에세이 8 – 송은이 언니는 양파, 마흔셋 엄마는 어린 어른이

다만 사랑 하나에 미쳐 참 용감히 파란 눈의 남자와 결혼했다. 그리고 심히 기묘한 보고도 믿기지 않게 예쁜 갈색 눈의 딸들 넷을 낳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의 보물들을 만난 것 외엔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어느새 4학년 3반이다.

인생을 아무리 뒤돌아보아도 누군가를 따뜻하게 위로할 만큼 착한 지혜로움이 없다. 누군가를 깊이 있게 이해할 만큼 넓은 가슴은 더욱이 없다. 부끄럽지만 내 가슴이 작은 건 사실이다. 여전히 나밖에 모르는 어른 아이니까.

좋아하면 좋아한다 말하기,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 말하기, 하고 싶으면 하고 싶다 말하기. 사실 내가 제일 못 하는 것이 말하기다. 진짜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를 참 못 한다. 입 밖으론 말 못 하지만 글자론 진심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되려다 한카타임즈를 만났고 지금 이렇게 비상하며 비행 중이다. 글을 쓰며 용기를 내어 마음 말하기를 연습해 본다.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아프면 아프다 말하기, 그리우면 그립다 말하기, 사랑하면 사랑한다 말하기. 내가 제일 못 하는  말하기. 진짜 내 가슴을 말하기다. 정말 그 시간이 다가왔다. 떨린다. 잃어버린 가슴을 찾고 싶어 글을 쓰는지 모른다.

살아오며 내내 나의  진심을 말하지 못하다 보니 안타깝게도 지금은 가슴이 없어졌다. 슬퍼도 슬프다 말하지 못했다. 그러다 가슴에 큰 병이 났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몸부림치다 여러 번 쓰디쓴 이별을 먹었다. 모르고 싶은 그 쓴맛을 몇 번이나 먹었다. 어쩔 수 없는 이별을 삼키고 또 삼키니 쓴맛이 싫어졌다. 만남도 좋아함도 사랑도 다 싫어졌다. 연애란 놈에게서 멀리 도망치고 싶어졌다.

그런데 접촉 사고보다 더 강렬한 접속 사고가 일어났다. 2010년 그 접속 사고로 내 운명이 바뀌었다. 나는 지금 캐나다에 살고 있다. 내 얼굴의 DNA로는 도저히 빚어낼 수 없는 그림 같은 아이들이 올망졸망 있다. 그래서 꿈처럼 행복하다. 그러나 그래도 꿈처럼 그립다. 엄마가 그리워 자주 눈물을 쏟는다. 내 나이 마흔셋에도.

엄마지만 나는 딸이니까 그렇다. 늘 엄마를 너무나 보고싶어 하던 딸, 아무도 모르게 혼자 울던 딸이라 그렇다. 나이 마흔셋도 어린 어른이 될 수 있다. 마흔셋도 어린 어른이다. 엄마가 되었지만 아직 어린 어른이라 울고 싶다. 엄마도 울수 있다. 엄마는 울어도 된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에만 울 수 있지만 그 밤에라도 울 수 있어 감사하다.

이렇게 10,563 킬로미터 떨어진 여기서만 울 수 있다. 슬퍼도 엄마 앞에선 울 수 없던 딸로 31년을 살아냈다. 지금은 아이들 앞에서 울 수 없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울고 싶은 엄마로 살고 있다. 다둥이 육아를 해 본 엄마들은 아는, 아니 엄마라면 누구나 아는 눈물 나는 육아 맛이 있다. 아이들 모르게 울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프면 울 수 있는 지금이 나는 훨씬 좋다. 사랑도 결혼도 두렵던 나지만 결혼해 네 아이들의 엄마가 된 지금이 나는 더 행복하다.  아이들 넷을 재우고 깊은 밤마다 기도하며 우는 나는 마흔셋의 엄마, 아직 어린 어른이다.

한참을 깊은 우울증의 늪에서 허덕일 때 나를 구해준 팟캐스트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이다. 북 콘서트 이후 약 5년 만에 열리는 비보쇼가 티켓 오픈 동시에 30초 만에 전석 매진을 기록했단다. 비록 캐나다에 있으니 갈 수는 없지만 숨어 듣는 애청자로서 기쁘고 설렌다.

인생이 가슴앓이라 그런지 송은이 언니와 결이 같으면서도 다른 나는 소문자 자연인이다. 송은이 언니와 똑같은 자연산이지만 품종이 다르다. 송은이 언니는 확연히 대문자다.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팟캐스트를 들어 본 땡땡이(청취자를 부르는 애칭)들은 다 알 것이다. 같은 듯 다른 과이다. 송은이 언니는  스위스 베른, 독일의 바이마르, 재천, 무안, 합천 등  전 세계인이 좋아하는 양파 같다.

반면 바람 빠진 풍선 위에 놓인 건포도다. 그래도 송은이 언니와 닮아서 참 좋다. 좋아하고 동경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닮는다는 건 누구나 바라고, 누구에게나 영광스러운 일이다. 내가 송은이 언니를 닮았다니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A반, 송은이 언니는 B반이다. 송은이 언니와는 아무 사이도 아니다. 비밀보장 팟캐스트 열혈 청취자로서 나는 송은이 언니를 더 좋아하고 더 닮고 싶다. 송은이 언니도 나와 비슷한 무엇이 있다는 것, 그것이 이 먼 나라에 사는 외로운 이방인에게 그래도 커다란 위안이다.

따뜻한 눈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이 세상을 품을 큰 가슴이 있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으로 들여다본다. 부끄러운 마음이 물밀듯 온다. 남편 하나 아이들 넷도 감당하지 못해서 가슴속은 늘 뜨거운 화구를 종일 켜둔 부엌 같다. 하루도 지지고 볶지 않는 날이 없으니 말이다.

언제쯤이면 이 작은 가슴으로 이 넓은 우주 만물을 다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 책을 한 열 권 쓴다면 그것이 가능할까. 부지런히 글 쓰는 사람의 길을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이 엄마의 글을 읽고 엄마를 진심으로 이해할 시간이 오길 기도한다. 지금 송은이 언니는 양파, 나는 비록 건포도일지라도.

이 글을 다 읽어도 그 답은 못 찾는다. 송은이 언니와 나의 가슴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 말이다.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면 검색창에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입력하라. 1회부터 듣기 강추!  우울증의 흑기사였던 비밀보장을 몬트리올에 널리 알리고 싶다. 칠월에 열리는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비보쇼를 기대하며. 한 번도 못 들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듣고 안 들은 사람은 없다는 팟캐스트 라디오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어쩌면 웃다가 배꼽이 쏙 빠질 수 있지만 꼭 1회부터 정주행하며 들어보시길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민소하
한국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 신문기자로 활동하다.
2011년 몬트리올로 이주, 네 아이들을 키우며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 민소하의 소설&에세이 SO 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