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의 위안
조병화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시방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 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날이 온다
그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날을 위하여 바쳐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시방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시인은 엇갈리는 존재와 시간의 안타까움을 언어를 가지고 해탈해보고자 하는 사람인가보다. 오늘의 시인은 내일의 상실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사무치는 시을 쓴다. 이토록 잊어버리려고 애쓰는 그 사람은 어디로 스쳐갔으며, 싸리꽃이 마구핀 잔디밭에서 누가 ‘그 사람’을 기억할까. 그곳에 무덤 하나 봉긋하게 솟아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