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을 지우는 방법

풍경을 지우는 방법

송종규

거기

느티나무가 있었다 거기 버드나무가 있었고

거기 층층나무가 있었다

거기

상수리나무가 있었고 거기 가문비나무가 있었다

가지 수종이 군락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초록으로 웅성거리는 똑같은 습성 때문에

그들을 동족으로 엮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

구릉까지 내달려온 눈부신 빛의 산화, 만발한 초록의 만개

거기

물수리의 깃털처럼 강렬한 태양과

적멸이 있었고

거기 소요가 있었다

누군가 뼈를 내려놓고 갔고 누군가

나무의 거친 등에 가려운 삶을 포개기도 했다

그러나 듬뿍 빛을 찍은 붓으로

거대한 나무의 테두리를 쓰윽 문지르기라도 한다면

풍경은 지워지는

울창한 숲과 사람과 무수한 글씨들의 테두리마저 지우고 나면

사실,

거기에는 대기와

대기의 오랜 습성이 있을 뿐이다

책을 읽듯 사람이 중얼거리며 곁을 지나갔고

사람이

깊은 숨을 들이키며 그곳을 지나갔다

채도와 대기의 원근법으로 풍경을 읽는 것은, 풍경을 지우는

하나의 방법이다

            시인은 독자에게 화두를 던진다. 풍경을 읽는 것은, 풍경을 지우는 거라고. 문득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 푸르고 살아있는 것이 맞을까의심이 드는 순간을, 내가 아니 다른 내가 이곳에 뼈를 묻고 나를 보고 있는 아닐까하지만 이런 생각과 눈에 들어오는 사물은 과연 얼마나 믿을만한 것인지. 어려운 한편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풍경을 읽는다는 , 세월을 읽는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