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지금은 다행이도 추억으로 말할 수 있지만 날씨가 풀리고 학기가 시작되는 4, 5, 6월은 한국인에게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최류탄 가스에 눈물과 콧물 그리고 심하게는 핏물을 쏟아야하는 시절이 있었다. 책 한 권 출판하고는 몇 년씩 감옥에서 보내야 했고 시 몇 편에 목숨을 저당잡혀야하는 일도 있었다. 가위 눌려 질식한 사회 속에서 혼미한 정신을 흔들어 깨우며 온 힘을 다해 ‘자유’를 외친 김지하 시인의 시집 ‘타는 목마름’은 그래서 세월이 갈수록 더욱 귀하다. 시인의 오랜 감옥 생활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자유는 어떤 무게일까. 잊지 말아야한다. 그 시절 민주항쟁의 처절함을. 6월, 6월 항쟁을 기억나게하는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