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유곽에서

이성복

1.
누이가 듣는 音樂(음악)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男子가 보였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音樂은 죽음 이상으로 침침해서 발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蘭草(잡초) 돋아나는데, 그 男子는 누구일까 누이의 戀愛(연애)는 아름다워도 될까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牧丹(목단)이 시드는 가운데 地下의 잠, 韓半島(한반도)가 소심한 물살에 시달리다가 흘러들었다 伐木(벌목)당한 女子의 반복되는 臨終(임종), 病을 돌보던 靑春이 그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워도 가난한 몸은 고결하였고 그래서 죽은 체했다 잠자는 동안 내 祖國의 신체를 지키는 者는 누구인가 日本인가, 日蝕(일식)인가 나의 헤픈 입에서 욕이 나왔다 누이의 戀愛는 아름다워도 될까 파리가 잉잉거리는 하숙집의 아침에

2.
엘리, 엘리 죽지 말고 내 목마른 裸身(나신)에 못박혀요 얼마든지 죽을 수 있어요 몸은 하나지만 참한 죽음 하나 당신이 가꾸어 꽃을 보여주세요 엘리, 엘리 당신이 昇天(승천)하면 나는 죽음으로 越境(월경)할 뿐 더럽힌 몸으로 죽어서도 시집가는 당신의 딸, 당신의 어머니

3.

그리고 나의 별이 무겁게 숨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혈관 마디마다 더욱 붉어지는 呻吟(신음), 어두운 살의 하늘을 날으는 방패연, 눈을 감고 쳐다보는 까마득한 별

그리고 나의 별이 파닥거리는 까닭을 말할 수 있다 봄밤의 노곤한 무르팍에 머리를 눕히고 달콤한 노래 부를 때, 戰爭(전쟁)과 굶주림이 아주 멀리 있을 때 유순한 革命처럼 깃발 날리며 새벽까지 行進(행진)하는 나의 별

그리고 별은 나의 祖國(조국)에서만 별이라 불릴 것이다 별이라 불리기에 後世찬란할 것이다 백설탕과 식빵처럼 口味(구미)를 바꾸고도 광대뼈에 반짝이는 나의 별, 우리 韓族(한족)의 별

이 시는 이성복이 1977년 ‘문학과지성’ 겨울호에 발표한 시다. 그런데 요즘 전범국 일본이 한일간 무역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걸 보면 역사는 돌고 돈다는 걸 부인할 수가 없다. 위안부문제, 강제징용문제가 이 시에 담겨있다. 시인은 유린당한 인권은 별이고 파닥인다고 말한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인데도 한반도는 아직 아물지 않는 상처로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