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서
봉투를 열자 전갈이 기어 나왔다
나는 전갈에 물렸다
소식에 물렸다
전갈이라는 소식에 물렸다
그로부터 나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빙그레 웃곤 하였다
축축한 그늘 속 아기버섯도 웃었다 곰팡이들도 따라 웃었다
근사하고 잘생긴 한 소식에 물려 내 몸이 붓고 열에 들떠 끙끙 앓고 있으니
아무튼, 당신이 내게 등이 푸른 지독한 전갈을 보냈으니
그 봉투를 그득 채울 답을 가져오라 했음을 알겠다
긴 여름을 다 허비해서라도
사루비아 씨앗을 담아 오라 했음을 알겠다
———————————–
시인은 사랑에 빠졌나 보다, 전갈은 소식이기도 하고 독충이기도 하다. 그러니 독충 같은 소식에 물려 몸이 붓고 열에 들떠 끙끙 앓고 있으니 어쩌랴. 사랑에 화답을 하려니 여름을 다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