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생각했던 것
울지 마라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생각하고 있는 것
울지 마라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막 생각하려는 것
울지 마라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 세계에서
이 세계의 어디에서
나는 수많은 나로 이루어졌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는 수많은 남과 남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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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이 불가에 몸 담고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고 나와 삼라만상이 다르지 않다고 시인은 말한다. 독재에 항거하다 고문 당하고 오랫동안 술에 쩔어 살던 시절 종로 골목길에서 비틀거리며 걷던 시인과 마주쳤을 때 지금은 작고한 김광협 시인은 혀를 차며 고은 시인의 안위를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누가 한 두 가지 행동으로 한 사람을 감히 평가하랴. 고은 시인이 지나왔던 길이 그토록 험했을진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