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
가을
내가 내리고 떠난 시골 역마다
기침 속의 코스모스가 퍼부어 피어 있고
네 눈시울이 하늘 속에서 떨어졌네
밤 깊으면 별들은 새끼를 치네
네 죽음을 쌓은 비인 식탁 위에서
나는 우연한 짧은 편지를 받았네
편지는 하나의 죽음, 하나의 삶
나뭇잎이 스스로 자기보다는 바람에 져야
가을 풀밭 벌레는 화려하게 죽고
이토록 네 지문(指紋) 같은 목소리의 잎이 지고 있네
‘어느 소년 소녀의 사계가’ 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되어있는데 그 중에서 ‘가을’을 떠왔다. 누군가는 젊은 날의 고은 시인이 데카당스했다고 과거형으로말한다. 젊은 한시절 데카당스 하지 않은 시인이 몇이나 되겠는가만 70년대 말 종로에서 스쳤던 고은 시인의 행색은 그야말로 데카당스하다못해 곧 분해될것 처럼 보였다. 험한 시대를 거치고 좌우충돌 스스로를 허물면서 수많은 시를 남기고 있는 시인의 한 계절의 편지를 감사히 받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