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
1. 옥저의 삼베
중학교 국사시간(國史時間)에 동해변(東海邊) 함경도 땅, 옥저(沃沮)라는 작은 나라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柳?발 꿈에 나는 옛날 옥저 사람들 사이에 끼여 조랑말을 타고 좁은 산길을 정처 없이 가고 있었습니다. 조랑말 뒷등에는 삼베를 조금 말아 걸고 건들건들 고구려(高句麗)로 간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갑자기 삼베 장수가 된 것이 억울해 마음을 태웠지만 벌써 때 늦었다고 포기한 채 씀바귀 꽃이 지천으로 핀 고개를 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딴 나라의 큰 마을에 당도하고 금빛 요란한 성문이 열렸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지금은 잊었지만, 나는 그때부터 이곳에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옥저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도 혼자서 이 큰 곳에 살아야 할 것이 두려워 나는 손에 든 삼베 묶음에 얼굴을 파묻고 울음을 참았습니다. 그때 그 삼베 묶음에서 나던 비릿한 냄새를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삼베 냄새가 구원인 것처럼 코를 박은 채 나는 누구에겐지도 모르게 안녕, 안녕 계속 헤어지는 인사를 하였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헛다리를 짚으면서도. 어느덧 나는 삼베 옷을 입은 옥저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오래 전 국사 시간에 옥저라는 조그만 나라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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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의 손을 잡고 한국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 온 사건이 있었다. CNN에서 며칠 동안 그 뉴스로 도배가 될 때, 문득 나도 그곳을 마음대로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은 화성으로 달로 넘나드는데 같은 언어를 쓰고 70여년 전에는 한 나라였던 곳에 누구 맘대로 금 하나 그어놓고 ‘분계선’이라 막아놓았을까. 옥저가 삼베 묶음으로 다가와 얼굴을 묻고 울고 싶을 때 개마고원도 가고 박연폭포에도 가고 명사십리 해당화도 보고 싶다. 그것이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 마종기 시인은 ‘현대문학’으로 등단했고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오랫동안 의사생활을 했다. 시집으로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