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밥상
정병근
아내가 늦은 밥상을 차려온다
저 여자 어디서 보았다
밥상을 껴안고 뒤뚱뒤뚱 걸어와
내 앞에 퍽, 엎어졌다 일어서는 여자의
때 묻은 뒤꿈치가 눈에 밟힌다
국을 뜨고 밥을 먹는다
시큼하고 비린 것들을 씹는다
무슨 말 끝에 제법 컴컴해진,
그 여자 안 보이고
수저 부딪히는 소리 저 홀로 쓸쓸하다
일부일처의 밥상이 나를 후루룩 마신다
물컹한 속을 다 퍼먹고 물러앉은 밥상이
국물을 뚝뚝 흘리며 TV를 본다
-이 시는 어쩐지 자끄 프레베르의 ‘아침식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한국인의 정서는 좀 더 끈적해서 커피 한 잔의 이별보다는 가지수가 많다. 늦게 들어와 밥을 찾는 남편이 고와 보일리도 없겠고 빈곤한 아내의 발뒤꿈치가 집안 사정을 내비친다. 아내는 이미 물린 밥상을 치우지 않았고 그 남편 또한 그대로 둔 채 TV 만 본다. 그 사이에는 기억되지 않는 몇 마디뿐. 일부일처제는 덫인가 울타리인가? 정병은 시인은 1988년 ‘불교문학’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