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빨래방

셀프 빨래방
 
이영주
 
빨래를 걷고 개고 창문을 닫는 너의 손에서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다른 행성으로 건너가다가 미끄러진 꿈 새벽에는 미열에 달리고 답답하고 외롭다는 너의 중얼거림이 멍청해서 세탁기를 돌립니다 금속성의 소리는 왜 이렇게 매혹적일까요 쇠냄새 나는 새벽 홀로 잠든 그림자를 만져 봅니다 흠뻑 젖어 있습니다 가짜 털은 너무 춥지 짐승을 잘 찢어야만 따뜻해진다니 우리 사이가 너무 내밀하면 죽음과 가까워져 이 새벽을 얼마나 더 침묵에 담가야 그 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빛의 파편이 흩어진 꿈 미끄러질 때마다 야행 짐승처럼 이가 자랍니다 멍청하게 외로워질 때면 킁킁대는 그림자 어느 과학자는 죽음이란 간과 공간이 없는 곳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낯선 행성에서 너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납작해져 있었다는 걸 이렇게 네가 버린 간과 공간 안에서 꿀 같은 대화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너는 슬픈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고, 그림자는 슬픈 이야기만 하고 싶어서 우리는 매일 매일 빨래를 돌립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털을 말립니다
————————————————–
인은 슬픔을 길어서 빨래를 한다. 씻어내는 것이 내 몸인지 내 몸에서 분리된 빨래인지 아니면 내가 털을 가진 짐승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인은 존재의 보이지않는 근원에 대해 자맥질을 하는 중이다. 외로워서 킁킁대고 닿을 수 없어서 세상과의 언어를 차단한다. 자꾸 죽겠다고 말하면서 누가 나를 좀 말려달라고(제지) 나의 슬픔 또한 말려달라(건조)고 하는 것 같다.
이영주 인은 200년 ‘문학동네’로 등단해서 집으로 ‘차가운 사탕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