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발, 빗발

장석주

 

빗발, 빗발들이 걸어온다 자욱하게 공중을 점령하고 도무지 부르튼 발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얼마나 먼 데서 예까지 걸어오는 걸까… 천 길 허공에 제 키를 재어가며 성대제거 수술 받은 개들처럼 일제히 운다… 자폐증 누이의 꿈길을 적시며 비가 걸어온다… 봐라, 발도 없는 게 발뒤꿈치를 들고 벼랑 아래로 뛰어내려 과수원 인부의 남루를 적시고 마당 한 귀퉁이의 모과나무를 적신다… 묵은 김치로 전을 붙이고 있는 물병자리 남자의 응고된 마음마저 무장해제 시키며 마침내는 울리고 간다… 저 공중으로 몰려가는 빗발, 저 쬐끄만 빗발들…

 


 

이 시의 문장은 간결하고, 힘 차고, 도도하다. 자칫하면 상투적으로 전락할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도 시를 팽팽하게 이끄는 힘이 바로 은유를 부릴 줄 아는 시인의 능력이다. 빗발이 새롭게 몰려오고 독자를 한바탕 소나기로 쓸어 넘기니 과연 장석주다. 장석주 시인은 ‘월간문학’, ‘조선일보’를 통해 시로 등단했고 ‘동아일보’에는 문학평론으로 당선됐다. 시집으로는 ‘햇빛 사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