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
나희덕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 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 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개가 엉성하게 받치고 선
네 약한 푸른 살을 찢게 될까 두렵구나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들게 한다면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 두겠다.
몸이 젖으면 어떠랴
만물이 눅눅한 슬픔에 녹고 있는데
빗발이 드세기로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
젖은 어깨에 손을 얹어
따뜻한 체온이 되어줄 수도 있는
이 비 오는 날에
내 손에 들린 우산이 무겁기만 하다
-비오는 날, 우산도 생각 없이 바쳐들고 가면 안되나보다. 혼자서만 우산을 쓰고 가도 안되나보다. 우산을 쓰고 가되, 나중에는 우산을 접고 비를 쫄닥 맞아야만 되나보다. 그래서 내 우산살이 창처럼 내 이웃의 허약한 비닐우산을 찌르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말의 무게가 예사롭지 않은 시다. 나희덕 시인은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김수영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