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인
스물몇 살의 여자가 이순을 넘겨 전화를 걸어왔다
골격만 앙상한 출렁다리 되짚고 오는
밑도 끝도 없는 추락에 관해 듣다가
웬 공백인가 싶어 40년을 몽땅 제하고
이태 동안 무수히 들락거렸던
그 다방의 몽환 속에 혼자 앉았다
그녀를 기다리면 중얼거린다, 아득할 거라는 데
조금도 설레지 않고 지루하기만 한
어떤 어긋남에 관한 이야기, 실은 보리수나무
그늘 탓이겠지, 한참 걸어오다 문득
다방 입구에 걸린 커다란 거울 안쪽에
무언가 놓고 왔다, 사정없이 짖뭉개진 약속이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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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을 넘겨 전화를 건 여자는 첫사랑이었을까? 불연듯 소식에도 불구하고 더이상 설레지 않는 나이. 지난 세월은 골격만 앙상한 출렁다리라고 시인은 쓴다. 그리하여 이 오래된 사람이 무언가 놓고 온 것은 더 이상 뛰지 않는 심장일까, 청춘의 기억일까 아니면 거울 속에 빛나던 젊은 자신일까…
김영인 시인은 중앙일보에 ‘출항제’가 당선되면 문단에 나와 2018년에는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라는 12번째 시집을 출간 했다. 섬세한 감성을 가볍지 않는 연륜으로 유려하게 표현해놓은 그의 시들을 읽는 것은 독자가 받는 이 시대의 선물이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