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
신대철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벌떼 같은 사람은 잠 들고
침을 감춘 채
뜬소문도 잠 들고
담비들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다
박꽃이 핀다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벌떼 같은 사람들이 잠든 사이 적막 속에서 꽃은 피고 비로소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릴 때 또 하나의 시가 탄생한다.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바로 그 동안은 몇 겁의 시간을 껴안고 있을까. 이 시의 단어 사이, 이 시의 행간 사이에는 또 몇 겁의 시간이 들어앉아 세상이 깨어나고 저물어가는 것일까.
이 시는 어릴쩍 충청도 청양에서 화전민으로 살아 산의 시인으로 불리는 신대철 시인의 첫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