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라 더 그렇겠지만 비교적 치안의 위험도가 적은 동네에서 친구들과 무리 지어 잘 노는 우리 아이들을 자주 본다. 오월의 봄이니 다들 집 밖으로 나와 놀기 시작한다. 우리 집에 와서는 잔디 위를 뛰어다니거나 플레이 하우스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고 아니면 트램펄린에서 신나게 점프하며 환호성이다. 그러다 자전거를 타고는 온 동네 꼬마들이 몰려다니며 몇 바퀴 순찰을 돈다. 뭐가 그리 좋은지 까르르 웃으며 노느라 해 질 녘 엄마들이 서로 찾아 나서야 집으로 향한다. 겨우 봄인데 벌써부터 이러니 여름엔 정말 아이들을 기다리다 밥때가 밤이 되기도 한다.
가만 떠올려 보면 나도 어릴 때 시골에서 해 질 녘까지 놀곤 했던 기억이 있다. 한 동네에서 잘 어울려 노는 우리 아이들과 친구들을 보면 흐뭇하고 기쁘고 편안하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이상의 뜨거움은 없다. 캐나다에서의 바람과 한국에서의 바람은 그 결도 얼마나 다른지 모른다. 상대적으로 주택 값이 저렴해 도시지만 시골스러운 곳에 살고 있기는 하다. 이 지역의 공기가 몬트리올 시내보다 덜 탁하거나 청량한 줄은 알지만 한국만큼 따뜻하다 느낀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참 이상한 일이고 이상한 감정이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있다지만 한국 공기가 더 깊고 뜨끈하게 느껴지는 건 비단 나뿐일까.
십 년 이상 한국인들과의 만남이나 교류가 거의 없다 최근 몇 개월 동안 전에 없던 행운이 찾아왔다. 그토록 바라던 한국인들과의 시간이 조금씩 늘어난 것이다. 오랜 세월 나를 괴롭히던 우울과 무기력을 단숨에 날려버릴 만큼 같은 언어로의 소통은 가히 놀라운 마력을 발휘했다. 활주로에서 가속을 내며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비행기처럼 몸과 마음에 변화가 일었다. 너무나도 기뻐서 마음의 중심을 잃고 과속을 한듯하다.
최근 가까워지고 싶었던 누군가에게서 외면당하는 쓰디쓴 경험을 했다. 순수한 의도로 전한 의사 표현이었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웠을 거라 짐작한다. 노란 바탕에 검은콩같이 생긴 그 국민 메신저로 대화를 시도하다 빚어진 일이다. 만약 내가 상대방의 상황을 조금 더 배려했더라면 어땠을지 돌이켜본다. 서로를 알아갈 기회조차 없이 관계가 정리된 것엔 아쉬움이 남고 상대방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국민 메신저에서도 연락이 뜸하다 우연히 상대방의 상황을 알게 되었고 더 늦기 전에 마음을 전하려다 실수를 했다. 어떻게든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에 상대방의 현재를 제대로 못 읽고 내 입장에서의 문자 메시지만 전송하고 말았다. 메신저상에서 문자로만 통한 대화 방법의 오류가 낳은 오해로 나의 선의는 묻히고 생각지 못한 결과를 맞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속이 좀 시끄럽지만 아픈 인간관계에 연연하기보단 건강한 인간관계에 더 집중키로 하고 마음을 추스른다. 요즘 억수로 비싼 값을 치르며 뼛속까지 아픈 경험을 하면서 인간관계 공부를 하고 있다.
오랜 세월을 그리워하던 한국인과의 시간들이다.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중한 만큼 앞으로는 적정 속도를 지키고 안전한 거리를 두며 조심스레 다가가야겠다. 마음을 전하는 말을 할 때조차 수 백 번 이상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한 뒤에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민자들 간의 교제에서 적정 속도와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매우 중요하고도 민감한 한인 관계의 미학을 미처 몰랐다. 메신저 소통이 불가피한 시대라 어쩔 수 없지만 편리하던 메신저를 처음으로 원망해 보았다. 마치 해일에 휩쓸리듯 단기간에 일어난 변화와 여러 가지 상황들 속에서 인간관계 맺기 훈련을 하는 중이다. 이 시간을 통해서 분명히 배우는 것이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작지만 깊은 용기를 주니 감사하다.
그런가 하면 눈부신 빛처럼 처음 뵀을 때부터 더 끌리고 따스함을 느낀 어르신 부부가 있다. 불과 몇 개월 전 알게 된 두 분은 영적 정신적 부모님처럼 첫 순간부터 아주 가깝게 느껴지고 뵐수록 평안하게 다가왔다. 마침 두 분의 자녀인 장성한 아드님은 미국에 산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나는 두 분을 마음속의 부모님으로 생각하며 마더스 데이만 기다렸다. 마더스 데이를 하루 앞둔 지난 토요일, 커피 한 잔을 하기로 약속하고 찾아뵀다. 연한 핑크빛이 도는 카네이션 꽃다발과 케이크, 그리고 작은 선물들을 갖고 댁을 찾아갔다. 요사이 나와 자매 이상의 정을 나누게 된 한국인 언니도 선물과 함께 두 어르신 댁에 동행했다. 약간의 계획이 있는 방문임을 숨겨야 하기에 인사만 드리고 바로 나오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부담을 느끼실까 봐 뵙기 전부터 망설이던 약속이었지만 용기를 내어 여쭤본 것이었고 흔쾌히 방문을 허락해 주셔서 가게 된 터였다. 점심시간이 지나 뵙기로 했지만 어르신께서는 상다리가 휘어지게 김밥으로 탑을 쌓으시고 잡채로 동산을 만드셨다.
어르신 부부의 따뜻한 환대에 마음속에선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한국에서는 어버이날을 챙기지 못한 이유로 마더스 데이에 두 분을 뵐 수 있어서 정말 감격스러웠다. 카네이션에 활짝 웃으시는 어르신을 뵈니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함께 간 언니 때문에 어색할 틈도 없었고 정말 즐거운 담소와 덕담이 오갔다. 우리 네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재롱도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 주시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셨다. 정신줄을 놓고 먹다 저녁때가 되었고 일어나려는 우리들을 만류하여 기어이 어르신은 잔치국수를 끓여 주셨다. 진한 멸치 육수에 어묵과 달걀지단과 김가루까지 올라간 인생 국수였다. 우리 부부와 네 아이들만 갔으면 어색하고 시끄러웠을 텐데 이미 어르신 부부와 가까운 사이인 그 언니가 있어 아주 편안하고 따뜻한 자리가 되었다. 함께 하니 더욱 풍성한 마더스 데이, 자평하긴 부끄럽지만 그날의 소박한 서프라이즈는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다.
그 집을 나서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혜의 보고인 황혼의 부부, 두 어르신처럼 짙은 오렌지 빛깔로 아름답게 지는 노을 속으로 맛있는 하루가 저물어갔다. 올 때는 양손 가득히 김치와 깍두기뿐 아니라 그날 맛있게 먹은 김밥과 잡채도 듬뿍 챙겨 주셨다. 사랑 한가득이라 정말 행복하고 아쉬운 마치 친정 나들이 같았던 잊지 못할 날이었다. 아직 뵐 날이 더 많은 두 어르신, 나의 캐나다 부모님께 고마운 마음을 수줍게나마 남긴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기도하며.
다양한 이유들을 안고 캐나다에 이민을 오신, 그 가운데 불어권인 퀘백주 몬트리올을 선택해 오신 아주 특별한 한국 사람들. 캐나다에 온 후로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할 것이다. 이민의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모두 뼈아픈 이방인의 삶을 꿋꿋이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끼리 서로 존경하고 존중하며 이해와 수용 속에서 캐나다인들보다 더 끈끈히 살아갔으면 좋겠다.
한국인에게는 우리만의 ‘정’이라는 아주 독특하고도 깊으면서 따뜻한 교감의 정서가 있다. 초코파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서로 너무도 잘 안다. 보이지 않지만 이제는 고유명사처럼 정으로 통하는 초코파이! 캐나다 몬트리올에 살면서 한국인 사이의 진정한 교제에 대해 생각의 나무를 키우고 있는 봄날이다. 초코파이가 뜬금없을지 모르지만 이민사회 속에서 한국인들과의 성숙한 관계 맺음이 우리에게 당면한 숙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들만의 암호이자 한 팀이라는 신호로 만나는 한국인들 사이에선 웃으며 초코파이. 김치 치즈 스마일 위스키도 괜찮지만 초코파이 하며 사진 찍을 날을 꿈꿔본다. 오리온 관계자는 아니지만 초코파이가 전 세계에서 사랑받기를 바라며, 정!
민소하
한국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 신문기자로 활동하다.
2011년 몬트리올로 이주, 네 아이들을 키우며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 민소하의 소설&에세이 SO 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