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와 미싱
박종명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발을 딛는 순간 사람들이 동네전파상에 걸린 TV 앞에 몰려와 하, 탄성을 질렀다 그 때는 집집마다 라디오와 미싱을 서로 가깝게 붙여 놓았는지 라디오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드르륵 미싱 돌리는 소리는 늘 섞여서 들렸었다 학교에서 담임선생에게서 구박받고 돌아온 날 아이는 자기 집에 없는 냉장고와 TV와 백색전화기를 너무 욕심을 내는 것을 아닌지 조마조마걱정하면서 꿈에다 목록을 올렸다 어른이 된 아이는 그 때 꾸었던 꿈을 남김없이 다 이루었다 꿈꾸던 것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이름들을 꼼꼼하게 적는데도 이제는 아무 꿈도 꿀 수가 없다 그래,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자랑스러운 것들은 꿈에 올려서는 안 되는 것이지 몰라 꿈에 올려서 사르륵사르륵 필름을 돌릴 수 있는 것은 꼭 서러워, 흘린 눈물이 다 마르기 전에 올려야하는 것인지 몰라 그래, 꿈은 아파야 아름다운 것인지 몰라 새벽마다 탈탈탈 자가용이 공회전하는 소리와 내부수리 중인 슈퍼마켓에서 탕탕탕 타카총을 쏘아대는 소리가 한 데 섞여 증폭되는 선진국 어디에도 아름다운 꿈은 없는 것인지 몰라 밤새 들리던 라디오와 미싱을 만나러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네이버 지식인에게 물어볼까? 꿈자리 뒤숭숭한 오늘 공사 중인 세운상가 앞이라도 어정거려 봐야겠다
학교에서 가정환경 조사가 있으면 집에 텔레비젼이 있는지, 라디오가 있는지…를 적는 종이가 있었다. 선생은 이 종이를 보고 반장이고 항상 일등을 하는 아이의 집에 TV가 없는 것을 가지고 ‘그것도 없어?’ 해버렸다. 그것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고 또 꿈이되었다. 그때 생각없이 뱉은 한 마디가 이렇게 시의 소재가 된 걸 그때의 선생은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