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출지

다시, 서출지

이종암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못의 아가리 위로 저 연꽃은 왜 피는지

그냥 못 둑에 서서 입만 벌어지다

다들 돌아간다

천 년 묵은 이 연꽃의 비밀을

나는 말해야만 한다

천년 사랑의 비밀 문서가 내장되어 저리 연꽃이 피는

書出, 池의 속사정을 나는 끝내 말해야 한다

막막한 뻘흙의 층을 지나 어둔 물 속의

계단을 밟고 초록의 세상 위로 고개 내민

연꽃은 사랑의 비밀 문서다

저것 때문에

못 둑의 늙은 배롱나무에서도

석 달 열흘 불꽃은 타오르는 것인가

비밀 문서가 세상에 나온 오늘

연꽃에 멱살 붙들린 서출지,

난리 났다고 물 속 억머구리 구르륵 꾸륵 울고

나 몰라라 저녁 해는 서둘러 제 길 떠나고

못의 아가리 주변을 따라 널브러져 있는

들꽃들은 초록으로 빨강으로 문서를 숨기려

저 야단들이다 물위 노랑어리연도 고개 쳐들고

사랑의 비밀 문서가 확 펼쳐진, 오늘

저 난리들 속에서

          이종암 시인은 1965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영남대 국어과를 나왔으니 경주 서출지의 연꽃과 영남대 삼천지 연꽃에 마음을 온통 두고 살았나보다. 젊은날의 뜨거움이 가슴속에서 들끓고 엉키고 분출하니 미려한 꽃송이가 되어 시인과 독자를 시속에 가두어버렸구나…